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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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손사태 대해부] 최태섭 작가 “손 놓는 정부, 이용한 정치권 책임 커… 접점 키울 양질의 소통 늘어야”

“억울한 남성들에 의한 ’백래시(어떤 생각에 대한 강한 반동)적 온라인 집단행동’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한국 사회의 안티 페미니즘, 남성성 연구를 해 온 사회학자 최태섭 작가는 이번 넥슨 게임 홍보영상을 두고 불거진 ‘집게손 사태’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자신이 피해를 입는다고 느끼는 남성들의 심리가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2023년 12월 27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최태섭 작가가 집게손가락 논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최 작가는 앞선 저서 ‘한국, 남자’(2018)에서도 “기존에 사회적으로 보장받던 기득권을 전처럼 유지하지 못하고 남자 간 경쟁, 남녀 간 경쟁 모두에서 밀린 이들이 억울해한다”고 한 바 있다.

 

◆억울함, 주관적이고도 강력한 감정

 

지난해 12월27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만난 최 작가는 “억울함은 주관적”이라고 했다. 억울하다는 건 명시적이고 다양한 차별을 당하는 사회적 소수자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란 이야기다.

 

최 작가는 “객관적으로 보면 사회적 차별을 더 많이 받는 소수자들이 존재하지만 개인이 느끼는 억울함은 이런 객관적 기준과 같지않다”며 “오로지 내가 느끼는 억울함에 집중해서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는 세계관은 우리 사회에 흔하다”고 잘라말했다.

최태섭 작가 2023.12.27 남제현 선임기자

이런 상황에서 나타나는 혼란은 어떻게 정리돼야 할까. 그에 따르면 “사회적 기준과 가치가 작동한다면 (모두가 억울함을 호소하더라도) 무엇이 차별인지 판단하고 그것을 없애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상황은 그런 기준과 가치가 무력해지면서 ‘누가 집단적으로 더 시끄럽게 구는지’가 기준이 돼 버렸다는 게 최 작가의 분석이다. 이는 “오히려 사회적 주류의 목소리에 관심이 더 쏠리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억울한 다수’가 탄생하는 배경이다.

 

최 작가는 2018년 저서에서 ‘기존에 사회적으로 보장받던 기득권을 전처럼 유지하지 못하고 남자 간 경쟁, 남녀 간 경쟁 모두에서 밀린 이들이 억울해한다’고 짚었다. 억울함을 느끼던 당시 남성들의 정서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악성 민원인’에게 휘둘리는 게임업계

 

게임업계는 대표적으로 남성 중심으로 작동하는 산업으로 꼽힌다. 업계 종사자 성비는 7대 3 정도로 추정되며 게임에 시간을 더 많이 쓰고 과금도 적극적으로 하는 소비자 역시 여성보다 남성이 많다는 게 중론이다.

 

최 작가는 게임업계가 혐오표현에 대응 기준을 갖고 있지 않은 점이 향후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한국 게임산업은 문화다양성이나 혐오문제 리터러시가 전반적으로 약하다”며 “게임시장 규모가 큰 북미나 유럽으로 진출할 때를 고려해서라도 논란이 발생하면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한국 기업은 이게 잘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태섭 작가 2023.12.27 남제현 선임기자

북미와 유럽시장에서도 남성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악성민원과 집단적 괴롭힘 등이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업계차원에서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대응들이 있었다. 

 

최 작가는 “유럽과 북미 기업들은 시장을 넓히기 위해서는 여성이나 유색인종, 성소수자까지 소비자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늘 성공적이진 않아도 사회적 가치에 기준으로 두고 리스크 관리를 하려고 하는데 한국은 이를 무마하려고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대한 기준도 만들지 못하고, 의사결정마저 편중될 수밖에 없는 현재 구조로는 앞으로 더 증가하게 될 사회문화적 리스크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우려점이다. 이번 집게손 사태를 두고 ‘집게손이 의도적으로 들어갔다’고 주장한 이들 중에는 과거 ‘일간베스트(일베) 상징 찾기’에 빗댄 이도 적잖다.

 

일베는 극우주의 성향을 띤 온라인 커뮤니티로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을 희화화하고 자신들의 로고 등을 상대를 조롱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외부 콘텐츠에 삽입해 비판 여론이 일었다. 최 작가는 일베 이용자가 실제로 상징물을 어딘가에 숨겼고 이를 대중이 찾아내며 주류 사회에서 몰아낸 전례가 이번에 집게손 모양도 의도적으로 들어간 것이며 이 역시 제거돼야 한다는 신념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태섭 작가 2023.12.27 남제현 선임기자

최 작가는 “이번 사태는 마치 2010년대 ‘숨은 욱일기 찾기’와 비슷하다”며 “의도적으로 찾아내려다보니 당시 햄버거 포장지까지 친일 논란으로 의심받은 적이 있는데 이번 집게손 사태 역시 억지로 찾아내려다보니 여기저기서 보이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런 온라인 집단행동은 “어떤 체계를 갖추고 일어나는 일이 아닌, ‘누가 나쁜 짓을 했다고 주장해서 벌을 받으면 기쁘고 안 받으면 그만’인 일인데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기업의 반응을 이끌어내면서 엄청난 효능감을 느끼게 됐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사회에서 지금 같이 반응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이런 악성민원 역시 계속될 것이란 예상이다.

 

◆정부·정치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최 작가는 이런 사회적 배경을 키운 책임이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고 봤다. 그는 “현재 정부는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상황”이라며 “정부부터 저런 입장인데 기업을 향해 ‘경제적 이익에 앞서 사회적 가치를 논의하자’고 설득하기가 쉽겠느냐”고 반문했다.

최태섭 작가 2023.12.27 남제현 선임기자

정부 기관이나 기업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납작 엎드려 문제를 무마하는 방식의 고객서비스에만 기댄다는 점도 꼬집었다. 최 작가는 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주장에 휘둘리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는 개념이 후순위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든 기업이든 그냥 (모든 종류의) 문제가 없었으면 싶은 것이고, 문제를 일으키는 세력은 이를 악용해서 세력을 키워나가는 식으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논란을 정치 이슈화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방식으로 왜곡하거나 이용하며 갈등을 심화시켜왔다”고 밝혔다. 고착화된 단절의 고리를 부수려면 ‘양질의 소통’이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어떻게 대화의 장을 만들지가 책임있는 사람이 해야 할 고민이지만, 그런 노력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최 작가는 “결국 정치가 어떤 의지를 갖는지가 중요하다”며 “극단적인 의견만 보고 서로 비난할 게 아니라 서로 접점을 늘리고 신뢰를 쌓을 대화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지율 때문에, 정치인이 주목받고자 젠더 이슈를 정치적 의제로 이용하면서 갈등을 풀어나갈 방식은 고민하지 않고 기계적 균형이라는 이름으로 갈등을 부추기는 형국이라는 지적이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