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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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어캣 등 긁어 깨우세요”… 야생생물법 시행에도 동물카페 ‘접촉체험’ 여전 [밀착취재]

업소 직원들 만지는 방법들 안내
먹이 유인해 어깨에 올려 주기도

스트레스 받은 동물들 ‘이상행동’
철창 갇힌 너구리 창살 계속 씹고
왈라비는 바닥 뜯어 먹는 모습도
“엄연한 불법… 단속 현황 점검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한 야생동물카페. 이곳에 전시된 미어캣 3마리가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2평 남짓 방안을 산만하게 돌아다녔다. 친구나 연인끼리 온 이들이 우르르 방 안에 들어가 미어캣을 만졌다. 1시간 동안 10여명의 관람객이 미어캣이 있는 방에 들어오고 나갔다. 미어캣은 사람들의 손길을 피해서 도망 다니느라 바빴다. 한 마리는 방 한쪽 구석과 맞은편 구석을 왕복 운동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야생동물카페는 동물원이나 수족관이 아니면서 입장료를 받아 미어캣과 라쿤을 비롯한 야생동물을 전시하고 관람객에게 식음료를 판매하는 곳이다.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한 야생동물카페에서 미어캣 한 마리가 출입구 앞을 쉬지 않고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미어캣들은 2평 남짓 방 안에서 불안한 듯 밖을 경계했다.

14일 야생생물법 개정안 시행 한 달을 맞아 야생동물카페 실태를 돌아봤다. 개정된 법은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 등 일부 야생동물을 전시금지 동물로 정하고 올라타기, 만지기와 같이 야생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전시금지 동물을 이미 보유하고 있던 시설에 대해선 지방자치단체에 보유동물과 개체 수 등 현황을 신고한 경우 4년간 전시금지를 유예한다. 물론 야생동물을 만지는 행위는 위법이고, 법 위반 시 과태료 최대 500만원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야생동물은 여전히 관람객의 ‘장난감’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야생동물카페 직원들은 동물을 만지는 행위를 금지하기는커녕 물리지 않고 만지는 법을 일러 주기도 했다. 한 직원은 “미어캣이 물 수도 있지만 아프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자고 있을 때는 등을 살살 긁어서 깨운 뒤 만지면 된다”고 설명했다. 일부 관람객들은 도망가려는 라쿤을 잡아 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귀엽다며 만졌다.

 

법이 개정돼 야생동물을 만지면 안 된다고 안내하는 업체도 있었지만 이곳에서도 ‘접촉 체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한 야생동물카페에서는 바위너구리를 먹이로 유인해 관람객 어깨 위에 올려주는 체험을 진행하고, 사실상 여우와 라쿤을 만질 수 있도록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 풀어줬다. 이형주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만지기를 금지한 것은 아예 접촉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사람과 접촉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시된 야생동물은 종종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날 방문한 한 야생동물카페에서는 캥거루과 동물인 왈라비가 전시실 바닥을 뜯어먹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목격한 관람객 일부가 직원에게 알렸지만 “왈라비뿐만 아니라 동물들이 가끔 저렇게 바닥재를 먹는 모습이 보이는데 말려도 소용이 없다”며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철창에 갇힌 한 바위너구리는 쇠창살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한 야생동물카페에서 체험이 끝난 뒤 바위너구리가 철창 안에서 쇠창살을 물어뜯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한 야생동물카페에서 왈라비가 바닥재를 뜯어 먹고 있다.

환경부의 2021년 현황조사를 보면 전국에 동물원이 아닌 야생동물 전시업체는 총 250개다. 이 가운데 140곳(56%) 업체가 음식점으로, 62곳(24.8%) 업체가 통신판매업·자유업으로, 48곳(19.2%) 업체가 동물판매·전시업으로 등록돼 있었다. 또 52곳(20.8%) 업체만이 야외방사장을 마련하고 있었다. 환경부는 이들 업체가 210개종의 야생동물 3518마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특히 현장조사를 한 34곳 가운데 33곳(97.1%)에서 만지기 체험이 이뤄지고 있었고 31개(91.2%)업체에서 먹이 주기 체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법과 현실의 괴리를 비판했다. 이 대표는 “과도기도 아니고 엄연한 불법”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자체는 불법 체험 운영되는 곳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적극적으로 법이 안착될 수 있도록 조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현정 카라 활동가는 “개정된 법 시행 이후 지자체별 단속 현황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며 “일방적으로 동물을 만지는 것이 교육 효과를 주기 어려운 만큼 시민들에게 법이 금지하고 있는 사항을 홍보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이후 실태조사가 없는 점을 두고 현황 파악이 우선이라는 당부도 나왔다. 허선진 중앙대 동물생명공학과 교수는 “어떤 종이 몇 마리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며 “종마다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보호시설을 마련하고, 지속가능성을 위해 동물복지와 교감 프로그램을 동시에 충족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할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환경부는 최근 충남 서천군에 포유류 140개체, 조류 200개체, 양서파충류 60개체를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준공했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보수적으로 봤을 때 4월에 해당 시설을 개소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