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곳이요? 거의 없다고 봐야죠.”
지난 9일 오후 1시쯤 서울 은평구의 한 김치찌개 식당. 점심이 지난 시간임에도 음식을 기다리는 이들로 테이블이 꽉 차있었다. 이곳은 ‘3000원 김치찌개’로 유명해진 식당으로, 2018년부터 쭉 이 가격을 유지해와 인근 직장인은 물론 어르신들까지 수백명의 단골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가성비’로 이름을 알린 식당이지만 음식 질 역시 어느 맛집 못지않다고 손님들은 입을 모았다. 직장인 이모씨는 “동료와 함께 와서 2인분에 라면과 고기사리를 추가했는데도 1만원이 넘지 않는다. 특히 밥이 무한리필이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며 “사장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장사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김치찌개 백반 1인분 가격이 지난달 처음 8000원대로 올라서며 “외식 물가가 선 넘었다”는 반응이 나오는 가운데, 이같이 ‘착한 가격’에 음식을 판매하는 업소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14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8개 외식품목 가운데 지난달 서울에서 전월보다 가격이 오른 메뉴는 김치찌개 백반과 삼겹살, 김밥 등 3개 품목이다. 김치찌개 백반은 지난해 11월 7923원이었으나 12월에는 77원 올라 8000원대를 기록했다. 지난 1년 인상 금액으로 보면 삼계탕이 923원으로 가장 많이 올랐으며 김치찌개 백반과 자장면은 같은 기간 각각 500원 올랐고, 칼국수도 424원 인상됐다.
고물가 속 한 그릇 3000원짜리 공깃밥까지 등장해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3000원 김치찌개’처럼 여전히 저렴한 가격대를 고수하는 식당들도 있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한 칼국수집도 손칼국수와 만둣국, 비빔밥 등을 5000원에 판매하며 알음알음 소문이 나 이제는 줄을 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맛집으로 등극했다. 가계 관계자는 “보쌈 등의 메뉴를 제외하고는 모두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 중”이라며 “점심시간엔 특히 인근 직장인이나 학생들도 많이 와서들 먹는데, 주머니 사정이야 뻔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날 방문한 가게들은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착한가격업소’로, 행안부와 지자체가 가격 안정 유도를 위해 지난 2011년부터 지정·운영해왔다. 저렴한 가격에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착한가격업소는 가격·위생·공공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정하고 있다. 착한가격업소를 운영하는 점주들은 “가격이 저렴하면 남지 않는 장사라고들 생각하는데, 오히려 입소문이 나 멀리에서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마포구의 한 업주는 “물가가 치솟아 가격 인상도 고려하긴 했지만, 손님들이 ‘감사하다’고 해주실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며 “정부 지원도 나온다고 해서 당분간은 저렴한 가격에 계속 운영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행안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국비 15억원을 편성해 착한가격업소 당 연간 85만원을 지원했다. 상하수도 요금 감면 등 세제 혜택과 주방세제, 고무장갑 등 필요 물품도 지원하고 있다. 정부 지원과 더불어 소비자들의 관심 속에 지난달 기준 7065개 업소가 지정됐고 지난해 919개가량 대폭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동일 지역 요금보다 평균 20~30% 저렴한 가격이 소비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착한가격업소 활성화에 기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은평구 김치찌개 식당을 운영하는 최운형 목사는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이나 상황이 어려운 어르신 등 외식 물가로 고민하는 이들이 정말 많다. 500원, 1000원 얼마 안 되는 가격일 수 있지만 한 푼이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조금의 인상이라도 정말 크게 다가온다”며 “앞으로도 10년은, 힘이 닿는 데까지 가격을 유지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 목사는 외식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 대해 “저희는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인건비를 아끼는 대신 많이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착한가격업소도 처음엔 쓰레기봉투라도 경비에 도움이 될까 싶어 신청하게 됐다”며 “하지만 물가가 많이 올랐더라도 밑지는 장사는 하고 있지 않다. 가격을 인상하는 다른 업주들의 상황과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심하게 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상할수록 더 악화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