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을 믿었다. 네모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보편적 질서다. 반면 원은 하늘로 대변되는 자연의 질서다. 어떤 건축가들은 네모로 이어져 온 기존 세상의 질서를 대체하기 위해 원을 사용하며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이 자연에 근접해 있다고 주장한다.
제주에서 원은 제주 자연의 특징 중 하나인 ‘오름’을 상징한다. 하지만 서귀포시 소정방폭포 인근의 절벽 위에 자리한 ‘소라의 성’은 원을 기본 질서로 하고 있음에도 ‘오름’보다는 ‘바다 생물체’가 생각난다. 그렇다고 건물의 형태가 바다 생물체를 직접적으로 닮지는 않았다.
소라의 성에서 바다 생물체를 떠오르게 하는 부분은 두 군데다. 하나는 바다를 향한 남쪽 발코니로 건물 전체적으로 쓰인 검은색 제주석과 대조적으로 흰색이다. 창 아랫부분과 발코니를 지지하는 네 기둥에는 제주 바다에서 나는 몽돌이 박혀 있는데 그래서 갑각류의 껍데기가 떠오른다. 다른 하나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소라의 빙글빙글 말린 구조 같은 곡선이다. 바다 생물체 외에도 소라의 성은 제주도 전통 돌탑인 방사탑이나 원형 돌집을 생각나게 한다. 과연 건축가는 어떤 형태를 의도했을까? 소라의 성에서 떠오르는 첫 번째 수수께끼다.
소라의 성은 행성 주변을 맴도는 세 개의 위성처럼 원형 평면의 건물을 가운데에 두고 동서북쪽에 작은 원형 건물이 하나씩 배치돼 있다. 이 중 서쪽에 있는 건물은 가운데 건물보다 높이가 더 높아서 탑처럼 보인다. 마감재로 유일하게 적벽돌이 쓰였다. 북쪽에 있는 건물은 한 개 층 높이로 발코니처럼 2층에 매달려 있다. 동쪽에 있는 건물은 북쪽에 있는 건물과 마찬가지로 한 개 층 높이지만 가운데 건물 1층에 삽입돼 있다. 정리해 보면 가운데 건물을 중심으로 주변의 세 건물은 높이와 삽입된 층을 달리하며 일종의 선율을 이루고 있다.
기능적으로 보면 주변에 배치된 세 건물은 불합리한 점이 많다. 특히 서쪽에 떨어져 있는 건물은 어떤 기능을 담기에는 너무 작다. 특별한 기능을 의도하지 않았다면 굳이 짧은 다리로 연결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설계자는 그렇게 해 놨다. 소라의 성에서 떠오르는 두 번째 수수께끼다.
‘소라의 성’이라는 이름은 1970년대 중반 건물이 해산물 식당으로 쓰였을 때 주인이 지은 상호다. 식당이었다면 커다란 부엌이 있었을 텐데 시스템이 중요한 주방 가구가 원형 평면으로 설계된 건물에서 어떻게 배치되었을지 궁금했다.
건물 내부에서 눈여겨볼 또 다른 부분은 천장 구조다. 설계자는 건물 내부에 기둥을 두지 않기 위해 천장에 육중한 보(빔·Beam)를 촘촘하게 배치했다. 아마도 바다를 향한 조망을 기둥으로 가리고 싶지 않았거나 건물 내부를 열린 평면(오픈 플랜)으로 처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떤 이유가 됐든 이런 구조에서 건물의 벽은 보를 지지하는 구조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운데 건물의 동쪽과 서쪽에 만들어진 창은 모두 작다. 반면, 보의 하중이 전달되지 않는 남쪽 벽에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큰 창이 설치돼 있다.
소라의 성에서 떠오르는 세 번째 수수께끼는 이런 특이한 평면과 신경 쓴 구조로 설계된 건물의 용도다. 일단 가장 유력한 설은 건축물대장에 주용도로 기입돼 있는 ‘관광전망대’다. 소라의 성이 관광전망대로 쓰이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바다에 바로 면한 절벽 위에 있기 때문에 전망도 뛰어나고 큰 창도 나 있다. 그런데 시기가 조금 맞지 않는다. 소라의 성은 1969년에 준공됐는데 당시 제주도의 관광산업은 시작도 하지 않은 단계였다. 그런데 관광전망대를 설치한다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위장하기 위해 건축물대장에 관광전망대로 등록해 놓은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는 ‘썰’이 하나 있다. 2014년 4월9일 자 ‘한겨레21’ 칼럼에는 이 건물이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원 숙소로 지어졌다는 주장이 실려 있다. 소라의 성 동쪽으로 120m가량 떨어진 파라다이스호텔 자리에 박정희의 별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추측에 신빙성을 더한다. 그런데 소라의 성은 경호원 숙소로 쓰이기에 적당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숙소라고 하기에는 건물의 평면이 너무 트여 있기 때문이다. 숙소를 목적으로 건물을 지었다면 가능한 칸을 나누는 게 더 합리적이다. 무엇보다 2층에서 내려오는 동선이 곡선을 이루고 있어서 비상시 빨리 대처하기도 힘들다.
가장 가능성 있는 추측은 이 건물이 누군가의 별장이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누군가는 정권과 가까운 유력자였을 듯하다. 아마도 그 유력자는 별장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지금도 외진 이곳에 ‘관광전망대’라는 용도로 건물을 등록해 놓은 것은 아닐까? 어쩌면 설계자는 건물의 준공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마무리했을 수도 있다.
소라의 성에서 떠오르는 네 번째 수수께끼는 건축주와 설계자다. 아직 어떤 기록이나 문서도 나오지 않았지만 건축계에서는 이 건물의 설계자를 김중업으로 추정한다. 건물이 지어진 1960년대에 이렇게 리듬감 있게 원을 사용해서 설계할 수 있는 건축가는 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 김중업은 국립 제주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발령된 문종철과의 개인적 친분으로 제주에서 몇 개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1961년 제주대학은 서귀포시 동흥동 1510번지 일대(현 서귀포의료원 부지)에 이농학부 캠퍼스를 계획했는데 김중업이 농학부 본관과 도서관 건물의 기본시설계획을 맡았다(1964년 준공). 그리고 농학부 캠퍼스 부지 남쪽으로 시설이 확충되면서 수산학부 건물(현 서귀중앙여자중학교)이 지어졌다. 김중업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옛 제주대학 본관(1967년)도 이 시기에 준공됐다. 소라의 성은 수산학부 건물에서 3㎞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제주대학과 소라의 성 사이의 관련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추측의 범위를 넓히면 소라의 성 설계자를 김중업이 아닌 제3의 인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1960년대에 건축물을 통해 이 정도의 조형성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건축가가 있었다는 즐거운 상상도 할 수 있다.
소라의 성은 수수께끼 같은 건물이다. 처음 용도, 건축주 그리고 설계자를 명확하게 알려 주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수수께끼의 끝은 그것의 해결에 있다. 하지만 소라의 성을 보면서 떠오르는 수수께끼만큼은 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궁금함이 풀리는 순간 궁리의 기쁨도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