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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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법원 “기술유출 최대 징역 18년형”… 국회도 법 개정 서둘러라

기술유출은 국가·기업에 큰 피해
‘손해액 5배’ 배상 법안 통과돼야
미성년자에 마약판매 무기징역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국가 핵심기술을 국외로 빼돌린 형사범에게 징역형으로 최대 18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양형기준 권고안을 엊그제 마련했다. 기술유출이 국가경제와 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데도 처벌 수위가 너무 낮다는 비판 여론을 받아들여 양형위가 기준을 수정하기로 의결한 지 5개월 만이다. 초범이라는 점을 주요 참작 사유에서 제외함으로써 판사가 형집행 유예를 쉽게 선고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한참 늦은 대응이기는 하지만 기술유출 행위를 엄벌할 수 있게 돼 다행이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8∼2022년 해외로 우리 기술이 유출된 사건은 적발된 건수만 93건에 이르고 우리 기업 피해액은 25조원을 넘어선다. 우리가 핵심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고 총력을 기울이는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등에서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산업기술보호법에는 국외로 기술을 유출한 자를 15년 이하 징역형 또는 15억원 이하 벌금형으로, 국가 핵심기술을 빼내갈 경우 3년 이상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양형 기준이 징역 1∼6년으로 지나치게 낮았던 데다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를 받는 삼성전자 전 연구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앞으로는 솜방망이 처벌이 더는 없어야 할 것이다.

기술유출이 이뤄지면 피해를 사후 회복할 길은 사실상 없다. 따라서 기술유출을 아예 꿈조차 꾸지 못하게끔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기술유출로 얻을 이익이 적발 시 손실보다 훨씬 크다면 유혹에 넘어갈 수 있으므로 손해배상 책임을 대폭 높일 필요도 있다. 기술해외유출에 대해 최대 65억원의 벌금을 물리고 배상한도를 손해액의 3배에서 5배로 상향하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야당 의원들 반대로 제동이 걸린 상태인데, 국회가 통과를 서둘러야 한다. 치열한 기술패권경쟁 속에서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기술을 지키는 데 여야가 따로일 수는 없다.

양형위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마약류를 팔거나 판매가액이 10억원을 넘는 마약을 유통할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하도록 권고하기로 하는 등 마약범죄 양형을 강화한 것도 시의적절하다. 앞으로도 불합리한 양형기준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