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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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창칼럼] 공수처 실패, 되풀이할 건가

‘빈손 퇴임’ 초대 처장 변명 씁쓸
2기 처장 후보추천위 조율 난항
여권의 친정권 인사 고집 부적절
수사 잘하는 중립적 인사가 해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김진욱 초대 처장이 지난주 3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여야 정쟁 속에 출범한 공수처를 “국민의 신뢰를 받는 중립적 수사기구로 만들겠다”는 김 처장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수사력 부족, 리더십 부재, 운영 미숙 등 숱한 시행착오만 겪었다. 지난해 1월 “올해는 가시적 성과물을 내놓는 데 역량을 경주하겠다”고 했지만 실패했다.

공수처는 내놓을 만한 성과가 없다. 3년 동안 단 한 건의 유죄판결도 끌어내지 못했다. 다섯 번의 구속영장 청구는 모두 기각됐다. 출범 초부터 김 처장이 ‘황제 조사’ 논란을 자초해 스스로 중립성을 훼손하더니 이후 손대는 수사마다 정치적 편향성 시비에 휘말렸다. 조직의 자중지란도 불거졌다. 오죽하면 출범 첫해 선발된 검사 13명 중 11명이 떠났겠나. 한 해 예산 200억원을 쓰면서 헛발질만 했으니 국가의 손실이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그럼에도 김 처장은 지난 16일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언론은 지난 3년간 공수처의 공이 없다고 보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후임자들이 일할 수 있는 인적, 물적 기반을 마련했다”고도 했다. 반성해도 모자랄 판에 자기 합리화로 일관하니 씁쓸하다. 개혁신당과 ‘새로운 선택’이 어제 “세금만 낭비하는 공수처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걸 봐도 그렇다.

게다가 공수처 2기 윤곽도 아직 안갯속이다. 지난해 11월 구성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아직 차기 처장 후보군조차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천위는 그간 6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게 추천할 최종 후보군 2명을 확정하지 못했다. 처장 직무대행을 맡는 여운국 차장도 오는 28일 임기가 끝난다. 수장 공백이 얼마나 오래갈지도 불투명하다.

문제는 현 정부가 공수처를 정상화시킬 의지가 있느냐다. 존폐 위기에 몰린 공수처는 중립성과 수사 역량을 갖춘 리더가 필요하다. 상식대로라면 1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부족한 것으로 드러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다. 어떤 후보자가 필요한지는 추천위원들이 잘 알고 있을 게다. 하지만 차기 처장 후보 선정 과정의 불협화음은 의구심을 들게 한다.

먼저 여권이 처장 최종 후보 2명 모두 판사 출신을 밀고 있어 우려스럽다. 판사 출신인 오동운 변호사는 추천위에서 여야가 이미 합의를 봤다고 한다. 나머지 한 명이 문제다. 후보 추천을 위해선 위원 7명 중 5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여권이 지지하는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놓고 야당 추천위원들이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판사 출신인 김 부위원장은 공수처 도입을 강하게 반대했고,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부적절하다”는 야당 측 주장이 무리가 아니다.

여권이 검사 출신을 내세우지 않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추천위에선 판사·검사 출신 1명씩 올리자는 의견이 제시됐다고 한다. 대한변협이 후보로 추천한 인사들 중에는 수사 능력이 검증된 검사 출신들이 있다. 하지만 여권은 검사 출신을 후보로 선호하지 않는 눈치다. 공수처의 칼이 현 정권에 입힐 상처를 의식해 기피하는 것 아닌가.

공수처는 현재 ‘채상병 사건 해병대 수사 외압’과 ‘전현희 권익위원장 표적감사’ 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감사원이 연루된 사건이다. 대통령과 친한 인사가 공수처를 이끌면 권력형 사건 수사가 제대로 되겠나. 또 그 결과를 국민이 신뢰하겠나. 향후 현 정부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을 수사할 때마다 부실·특혜수사 논란을 자초할 게 뻔하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공수처장을 자기 입맛에 맞는 인물로 앉히면 공수처는 또다시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다.

차기 공수처장은 공수처의 존재감을 세워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 수사 전반에 대한 지식, 검사·수사관 등에 대한 지휘 능력, 정치적 외압을 막아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기용돼야 한다. 추천위는 공수처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공수처 정상화는 여권이 정치적 셈법을 버려야 가능하다. 어떤 경우에도 친정권 인사들이 기웃거릴 자리는 아니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