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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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자유’ 앞세운 “위안부=매춘의 일종” 발언 무죄…정의연 “일본 재판부인가”

‘정대협이 위안부 할머니들 교육’ 발언만 유죄 인정…벌금 200만원
류석춘 전 교수 “‘매춘의 일종’ 발언 무죄라는 게 중요”…유죄 부분에는 항소 의사
2019년 논란 직후 학보사 인터뷰서 “34년간 갈등 없었는데 일이 꼬였다” 말하기도
정의연, 입장문에서 “반인권적, 반역사적 판결에 강력한 유감”
2019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전공과목 강의 중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가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전공과목 ‘발전사회학’ 강의 중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의 일종’이라고 말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류석춘 전 교수가 논란의 발언에 대해 24일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류 전 교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기억연대 전신)’ 관련 발언이 허위사실 적시라는 법원 판단에 따라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는데,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일본의 재판부냐”며 일부 유죄 판결에 그친 법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정금영 판사는 이날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류 전 교수 선고공판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는) 해당 발언을 명예훼손죄의 사실적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대학에서의 학문과 교수(가르침)자유를 보호하는 헌법에 비춰보면 자유의 제한은 최소한이어야 하고, 내용과 방법이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보여도 ‘위법한 행위’라고 함부로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면서다.

 

재판에서 다뤄진 류 전 교수의 명예훼손 혐의는 ▲위안부가 강제로 연행되지 않았다고 발언해 당시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부분 ▲정대협이 위안부들에게 강제 연행에 관해서 허위 진술을 하도록 교육했다고 발언해 정대협의 명예를 훼손한 부분 ▲정대협의 핵심 간부가 통합진보당(통진당)의 핵심 간부라고 발언해 정대협의 명예를 훼손한 부분 ▲정대협이 북한과 연계돼 이적 행위를 하고 있다고 발언해 정대협의 명예를 훼손한 부분 총 4가지다.

 

재판부는 류 전 교수의 ‘매춘의 일종’ 발언은 매춘에 종사하려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기보다는 ‘취업 사기’와 비슷한 형태로 위안부가 됐다는 취지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비유도 부적절하고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발언이지만 강의의 전체 맥락을 고려하면, 류 전 교수 발언 방법이나 내용은 학문적 연구 결과의 전달이나 학문적 과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키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류 전 교수 발언은 개인 특정이 아닌 일본군 위안부 전체에 관한 추상적 표현에 해당하고, 대학 강의 일환으로 이뤄진 토론 과정에서 그가 개인적으로 밝힌 견해나 평가로 볼 여지가 있다는 설명을 재판부는 더했다. 이에 재판부는 류 전 교수가 ‘정대협이 일본군에 강제 동원당한 것처럼 증언하도록 위안부 할머니들을 교육했다’는 취지의 발언만 허위사실 적시로 정대협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하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법정을 나서면서 류 전 교수는 “위안부가 매춘했다는 발언이 무죄가 나왔다는 것, 통진당이 정대협이랑 얽혀있다는 게 무죄가 나왔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유죄 판정 대목에는 항소 의사를 보였다.

 

2019년 9월 당시 류석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자신의 연구실에서 전공과목 강의 중 했던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 발언 논란으로 한 시민의 항의를 받고 있다. 뉴시스

 

앞서 류 전 교수는 2019년 강의에서 “(위안부 관련)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정부)이 아니다”,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문제를 제기한 학생에게 “궁금하면 한번 해 볼래요”라고 되물어 성희롱 논란도 일었다. 이 외에 “정대협이 개입해 할머니들을 교육했다”며 “(위안부 피해자들은) 해방 이후 쥐 죽은 듯이 와서 살던 분들인데 정대협이 개입해 국가적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이라고 주장해 정의연 관계자들 명예를 훼손한 혐의도 받았다.

 

류 전 교수는 논란 직후 학보사 ‘연세춘추’ 인터뷰에서 “잘못한 게 있어야 사과하는데 나는 사과할 일이 없다”며 “학교에서는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는 “‘해볼래요?’라는 말이 나온 맥락을 살펴보면 지금 매춘산업이 어떤지 학생들이 조사하라는 의미였다”며 “학생들에게 사과하라는 요구를 검토는 해보겠지만, (애초) 그런 의도도 아니었고 하지도 않은 일을 사과하면 정말 억울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강의 내용이 ‘새로운 연구 결과’였다는 입장도 되풀이했다. 그는 “‘위안부는 강제로 동원됐다’는 것이 보편적인 국민 정서나 학계 설명”이라며 “그러나 새로운 연구 결과들은 위안부가 민간에서 벌어진 매춘의 성격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널리 알려진 것과 다른, 새로운 연구 결과에 대해 강의했다”며 “일본이 당시 우리나라 여성들을 강제로 위안부로 끌고 갔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라는 증거가 많다”고 덧붙였다.

 

위안부 피해여성들에게 자발성이 있었다는 주장도 폈다. 류 전 교수는 “물론 당시에는 그만두기 더 어려웠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자발성이 하나도 없이 완전히 당하기만 한 건가”라고 물었다. 이어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위안부 여성들이 집단행동으로 파업도 했다고 한다”며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나의 양심과 학문의 자유”라고 부각했다.

 

문제 발언이 교수와 학생 간 권력 위계가 존재하는 강의실에서 이뤄진 점을 지적하는 취지 학보사 질문에는 “인정한다”면서도 “학생에게 교수의 권위를 내세우는 편은 아니다. 직선적으로 말하지만 위선적이지는 않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학생들과 큰 갈등 없이 34년간 강의했다”며 “이번에는 희한하게 일이 꼬였다”고 말했다.

 

이듬해 7월 연세대에서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았지만, 정년퇴임을 한 달가량 앞둔 상태의 징계라 큰 의미는 없었다. 류 전 교수는 2020년 1학기를 끝으로 같은 해 8월 정년퇴임했다.

 

정의연은 판결 후 ‘반인권적, 반역사적 판결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류석춘 전 교수는 명백한 허위사실로 진실을 호도하고 세계 인권운동사를 새로 써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시대착오적 색깔론으로 폄훼했다”며 “국제사회가 공히 인정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체적 진실을 재판부는 부인하는 것인가, 정금영 재판부는 일본의 재판부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재판부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들은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근본 가치보다 우선할 수 없다”며 “대학 교수는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지닌 미래세대를 길러야 할 엄중한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류 전 교수가 일본 우익의 전형적인 표현으로 역사를 부정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입혔다면서, 단체는 재판부를 향해 “일반 국민의 상식에 어긋나는 반사회적 판결을 했다”고 날을 세웠다. 나아가 검찰이 항소해야 한다고도 이들은 강력히 촉구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