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 인문 기행/서경식/최재혁 옮김/반비/1만8000원
책은 저자가 2016년 뉴욕 공항에서 마음에 쏙 들었던 페도라를 잃어버리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뭔가 불안하게 출발한 미국 도착 당일 밤, 그는 맨해튼의 카네기홀 건너편 카페에서 강한 기시감으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나이트호크스’를 떠올린다.
“지금 내 모습은 그 그림 속 남자와 같지는 않을까. 하지만 이미 모자를 잃어버린 나는 맨머리다.” 그에게 호퍼의 그림 속 도회의 풍경은 투명하고 비통한 공기를 연상케 한다. 아마도 그에게 미국 기행은 ‘불안함’이었을 것이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은 저자의 ‘나의 인문 기행’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책으로, 단순히 어떤 나라를 돌아봤다는 감상이 아니라 그가 여행하면서 느낀 시대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수감된 두 형(서승과 서준식)의 구명 운동을 하기 위해 미국을 처음 찾았던 그에게, 미국은 필연적으로 ‘희망’이며 동시에 ‘절망’의 공간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기행과 그가 느낀 미국에 대한 감상은 언제나 미술관에서 본 그림과 연결돼 있다. 그리고 그림 속엔 암울한 현실과 작은 희망이 담겨 있다.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그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회화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과 함께 한국의 민주화운동 당시 소책자에 실려 있던 이 글귀를 떠올렸다.
미국이 여전히 절대적인 힘을 가진 세상에서, 극동 출신의, 일본에서 생을 살았던 이 디아스포라는 미국이 부디 ‘선한 아메리카’로 남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