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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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직면한 우정… 긴 시간 끝에 재회하는 두 친구 [창간35-제2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줄거리

폭설로 샤를 드골 공항이 마비된다. 승객들은 항공사가 제공한 호텔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여러 인물의 만남이 발생한다. 파리 미술관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도슨트 역할을 하던 박혜람도 발이 묶이게 된다. 일과, 남편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자 했던 지난 십여 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남겨두고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국에는 오랜 시간 그녀의 단짝이었던 김섬이 있다. 타투이스트 김섬은 인터넷을 통해 박혜람의 귀국 시간을 체크한다.

박혜람은 짐을 분실한 상태로 귀국하고, 김섬과 함께 살았던 후암동 집에서 며칠을 묵게 된다. 박혜람은 예전과 달라진 김섬의 일상에 난처해지고, 느닷없는 방문자로 인해 김섬에게 홍지표라는 연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방관인 홍지표와 김섬의 관계는 어떤 이유로 일반적인 궤도로 진입하지 못한다. 그날 저녁, 김섬은 박혜람에 대한 오랜 감정의 찌꺼기를 터뜨리고, 우정보다 더 진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갈등에 직면하며 균형감을 잃는다. 실크 안감처럼 밀착된 지점에서 김섬을 지지하고 보호하던 박혜람. 하지만 그 안감은 얼마나 순하고 손상되기 쉬운가.

박혜람은 강원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새로운 일상의 축을 세운다.

김섬은 동료 소방관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홍지표에게 마음을 조금씩 내주게 된다. 그의 어깨에 있는 화상자국을 타투로 가려주며 그에게 동거인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와의 관계를 이어간다.

홍지표는 우연히 본 영화에서 불현듯 어린 시절 겪었던 성추행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기억은 그를 한방에 무너뜨린다. 김섬은 괴로워하는 홍지표를 지켜보는 일이 부담스러워 결국 그를 떠난다.

홍지표와 헤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김섬은 십 년 만에 본가가 있는 슬구포로 내려가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지금은 탯줄로 연결되어 있지만 아이는 곧 태어나면서부터 독립된 생을 꾸려가게 될 것이었다. 비록 자신이 품고 있지만 아이는 이미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 인식되었다.” 또 하나의 섬이 생긴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결단을 내린다. 오늘의 나무가 어제의 그 나무가 아니듯 김섬과 박혜람은 각자의 긴 산책 끝에 재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