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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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의원 “지금도 식당, 부동산에서 쫓겨나...이런 어항 깨는 게 나의 일” [차 한잔 나누며]

2023년 대정부질문 ‘코이 이야기’ 연설로 기립박수
“장애인 정책 콘트롤타워 요청하는 호소였는데
코이 이야기뿐인 언론 보도에 안타깝고 속상해”
일반전형으로 숙명여대 피아노학과 수석 입학
장애인 체육대회 선수로 나가 은·동 메달도 수상
국회 비례대표 영입…들러리 거부 “그 이상 하겠다”
점자법, 장애인 체육활동 예산 확대·법 개정 앞장

“저 뿐 아니라 모두에게 성장을 가로막는 저마다의 어항이 있어요. 저에게 국회는 그 어항을 깨는 공간입니다.”

 

여야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한국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연설하고 기립박수를 받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지난해 6월 대정부질문에서 어항의 크기에 따라 성장이 달라지는 물고기 ‘코이’ 이야기를 빗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기회와 가능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정부가 강물이 되달라고 호소하자 양당 의원들은 일어나서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최근 세계일보와 만나 “아쉽고 속상했다”고 말했다. 장애인 정책을 총괄할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는데 언론보도엔 온통 코이 이야기 뿐이어서다.

 

2020년 21대 총선 전 미래통합당(현재 국민의힘)의 비례전용정당인 미래한국당 영입인재로 정치에 입문한 김 의원은 최근 시각장애 피아니스트에서 국회의원이 된 과정과 소회를 담은 책 ‘어항을 깨고 바다로 간다’(사이드웨이)를 펴냈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과 안내견 ‘조이’. 김 의원은 최초의 여성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이고, 조이는 최초로 국회(본회의장)를 출입한 안내견이다. 당초 국회법 148조에 ‘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에 회의 진행에 방해가 되는 물건이나 음식물을 반입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 때문에 조이의 국회 출입 금지 논란이 벌어졌었다. 서상배 선임기자

앞이 안보여 여기저기 부딪쳐 온 몸이 멍투성이였던 어린시절부터 피아노를 전공하고 안내견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 가고, 국회에 입성하기까지 그는 숱한 벽을 마주했다. 김 의원은 “저는 환영받는 일을 한 적이 없다. 늘 반대에 부딪쳤다”고 회상했다.

 

딸이 중학생이 되면서 아예 보지 못하자 어머니는 “너 죽고 나 죽자”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내 인생은 내 것이고, 그 끝은 내가 결정하겠다”며 거절했다. 김 의원은 “그 때의 기분은 참혹하다는 말로도 충분하지 않다”면서 “저는 말대꾸라도 할 수 있었지만 매년 부모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는 발달·중증장애인들은 그 말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공감도, ‘동반자살’이라는 표현도 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김 의원은 “저는 (시각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비관한 적도 별로 없었다”면서 “가족들이 엄하게 대해선지 어려서부터 독립적이었던 것 같다”고 한다. 특히 할머니는 앞이 보이지 않는 손녀를 받아줄 피아노 학원을 일일이 찾아다니고, 장애인 전문 코치가 있는 수영장을 찾아 종로에서 강동구 고덕동까지 그를 데리고 다녔으며, 비장애 아이들과 똑같이 공부하라며 수학문제도 하나하나 직접 읽어주셨다. 

 

덕분에 그는 음악 못지 않게 스포츠도 즐겼다. 2020년 전국 장애인 동계체육대회 여자 크로스컨트리스키 부분에서 은메달, 바이애슬론에서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김 의원은 “텐덤바이크(안장과 페달이 2개인 2인용 자전거)도 기록이 잘 나와서 대회에 나가려고 했고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고 싶었는데 국회 들어온 후 운동을 못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마라톤을 두세 번 나갔다가 넘어져서 다쳤다”고 말했다. 운동의 필요성과 효과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는 장애인의 체육활동 증진을 위해 관련 예산을 늘리고,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에도 앞장섰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열심히 일하는 의원, 국민을 위해 심부름 잘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하지만 국회 입성이 단순히 시각장애인의 ‘인간 승리’나 ‘성공’을 의미하진 않는다. 비례대표 영입인재 제안을 받았을 때 ‘그냥 김예지 씨가 안내견과 국회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큰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모 당의 대표는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고도 했다. 그래서 김 의원은 영입 수락 입장문을 통해 “저 선천인데 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그 이상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3년여간 총 165건의 법안을 대표발의(철회 제외)해 39건을 통과시켰고, ‘국정감사 우수의상’과 ‘국회를 빛낸 바른 정치언어상’ 등 20여개 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당 지도부에 합류했고 12월 출범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 비대위원으로도 뛰고 있다. 

 

그는 “제가 발의한 법안이 실제로 시행돼 현장에서 그 결과물을 봤을 때 가장 보람있었다“면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내서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점자 공보자료를 받았을 때, 스포츠산업진흥법을 추진해서 잠실, 부산 등 야구장에서 시각장애인에게 실시간을 야구 중계해주는 단말기를 받아봤을 때 ‘이게 정말 되는구나’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돼 얼굴이 꽤 알려진 후로도 그는 여전히 안내견과 식당에서 쫓겨나고 부동산에서 문전박대를 당한다. 그가 국회에서 할 일이 아직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는 책에 “법을 어긴 업주들에게 과태료를 물게 하거나 국가인권위에 제소할 수 있겠지만, 과태료를 물리지 않더라도 나(장애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바란다”고 썼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이 된 그에게 롤모델이 있었냐고 물었다.

 

“제가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지금은 그 과정이고 자격을 갖추는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