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제도 개혁에 실패하고 이를 정부부채로 충당할 경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70년쯤 250% 이상으로 급등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연금개혁이 1년 지체될 때 수조원의 추가 부담이 생길 것으로 관측되는 등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과다한 정부부채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2일 한국국제경제학회 주최로 서울대에서 열리는 ‘2024년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제2전체회의’ 이런 내용을 담아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조 원장은 “저출산·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 변화의 영향이 보다 극적으로 나타날 장기 시계에서 바라볼 때, 개인적으로 가계나 기업의 민간부채보다 정부부채가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저출산·고령화가 민간부채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근거는 뚜렷하지 않은 반면 정부부채는 인구구조 변화에 결정적으로 의존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 원장은 한국의 정부부채 비율이 주요국 대비 낮아 부채를 더 늘려도 된다는 의견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50년에 100%를 상회하고, 이후에도 빠른 속도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서 “만일 연금제도를 개혁하지 못하고 그 부족분을 정부부채로 충당하기 시작한다면, 2070년쯤에는 250% 이상으로 급등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부채 문제를 과대포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면서도 연금 개혁 등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개혁을 지체하는 데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개혁의 시급성 만큼은 강조하고 싶다”면서 “한 예로, 연금개혁이 1년 지체될 때 발생하는 추가적 부담은 수십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지적했다.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부의 공적지원이 부채 규모를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조 원장에 따르면 전체 가계대출에서 ‘공적지원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9%에서 2022년 18%로 확대됐다. 공적지원 대출은 주택금융공사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같은 공공기관의 보증을 통한 전세자금대출, HUG의 대출, 주택금융공사 정책모기지(적격대출+보금자리론)의 합을 말한다. 조 원장은 “공적지원 대출을 제외한 일반 대출의 증가율은 연 평균 5%를 하회하고 있어, GDP 대비 가계대출 비율이 증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한 대목”이라면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2022년 금리가 상승하면서 일반 가계대출은 20조원 가량 감소한 반면 공적지원 대출은 여전히 13조원 증가했다는 점”이라고 부여했다.
조 원장은 이어 공공기관 보증과 연관된 대출은 시중은행 입장에서 대출 건전성을 꼼꼼히 살펴볼 이유가 많지 않고, 공공기관 입장에서도 보증의 양적확대가 기관의 ‘업적’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면밀한 보증심사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조 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보다 쉽게 대출을 늘릴 수 있고, 또 늘리는 게 유리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결국 이는 가계 금융이 사회적으로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수준을 상회하여 확대될 가능성을 높이며 그 결과 오늘날 우리 경제의 ‘과잉 부채’ 문제가 잉태됐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공공기관 보증의 확대는 부정적 충격 발생시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의 혼란을 완충할 수 있을지 모르나 금융시장 전반의 중장기적인 효율성 저하와 부채의 ‘과잉 팽창’이라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