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관장의 수첩/윤범모/예술시대/3만원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포함해 5년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저자가 재임 시절 회고와 언론 인터뷰들을 모아 엮었다. 치적 과시가 아닌 국립현대미술관의 업무와 방향 등을 소상히 정리해 큐레이터 및 미술관 업무를 희망하는 후학들에게 지침서가 되고자 펴낸 책이다.
특히 미술계 일대 사건인 삼성가의 ‘이건희컬렉션’ 기증에 대한 감회가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김환기나 이중섭의 대표작 몇 점 정도만 기대했다가 1000점 넘는 명작들의 기증목록을 받고 경악한 이건희컬렉션은 평소 미술관에 거리를 두었던 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미술관으로 향하게 했다. 또한 백남준의 대작 ‘다다익선’이 해체될 뻔했다가 결국 되살아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미술 한류’도 저자가 재임 중 잊지 못할 기억이다. 특히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은 그가 본 전시와 보지 않은 전시가 나뉠 만큼 한국 현대 미술의 세계화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저자는 여기에 더해 “서양미술 범람 시대에 우리 미술의 진면목을 만나고자 많은 세월을 보냈다”고 언급할 만큼 ‘한국미술의 정체성 찾기’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간 예산이 700억원대가 넘는 외형만으로는 세계 최대규모의 거대한 기관을 혼자 책임지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자리가 겉으론 우아한 자태를 뽐내지만 수면에 떠 있기 위해 두 발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백조라고 비유했다. 특히 정권이 바뀌면서 엄청난 사퇴 압박 속에 물러난 현실을 들춰내며 미술관장이 문화예술에만 전념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모습도 꼬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