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거리에서 지상표적을 정밀타격하는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 지역의 전략 표적을 공격하려면, 폭탄을 실은 전폭기가 위험을 무릅쓰고 적군이 구축한 방공망을 통과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조종사가 대공화기에 피격돼 목숨을 잃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등장한 것이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다. 수백㎞ 떨어진 곳을 비행하는 전투기에서 발사, 빠른 속도로 초저공 비행을 감행해 지상 시설을 파괴한다.
적 대공화기나 전투기 위협을 받지 않는 안전한 곳에서 미사일을 쏘고 귀환할 수 있고,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까지 교전 지역을 확대하는 효과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 시설과 군함을 잇따라 타격해 실전에서 능력을 과시하는 모양새다. 한국군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운용범위를 기존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우크라서 주목받는 미사일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동안 관심을 받지 못했던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의 위력이 재조명된 계기였다.
2010년대 이후 리비아·예멘 내전과 이슬람국가(IS) 소탕 작전 등에 투입되어 군사적 효과를 입증했지만, 정치적 반향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달랐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러시아군 기지 등을 타격하고자 우크라이나는 서방에 무기 지원을 요청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지난해부터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대거 지원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보낸 무기는 스톰 섀도(프랑스명 스칼프)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영국은 이라크 공군기지 활주로를 무력화하고자 저공침투비행을 통한 공습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라크군이 비행 예상 경로에 대공화기를 배치해 대응하면서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영국은 프랑스와의 공동개발을 진행해 2003년 스톰 섀도를 처음 실전배치했다.
최대 사거리가 560㎞지만 수출용은 250㎞다. 위성항법장치(GPS)와 관성항법장치, 디지털 지형대조 체계를 통해 30~40m 고도로 비행하면서 표적까지 날아간다. 오차반경이 1m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정밀하다.
관통력은 타우러스보다 훨씬 낮지만, 미국산 재즘(JASSM)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 서부 일대는 두꺼운 지하벙커가 많지 않으므로 스톰 섀도 정도의 관통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미국이 제공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보다 사거리가 3배 늘어났고, 공간상의 제약도 없어서 효용성이 높다. 프랑스가 최근 스칼프 미사일 40기를 추가 지원하기로 한 것도 그만큼 전장에서 효과가 크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에 제공된 스톰 섀도는 러시아군이 보급로로 사용하는 교량과 군사령부를 타격했으며, 크름반도에 있던 러시아 해군 흑해함대 사령부와 다수의 군함을 파괴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크름반도 세바스토폴에 있던 함대 전력의 3분의 1을 철수시켜야 했다.
스톰 섀도가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하면서 독일이 개발한 타우러스 350K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지원도 거론되고 있다.
사거리가 500㎞에 달하는 타우러스 350K는 지하로 8m 이상 관통하면서 탄두를 터뜨려야 할 지점을 자동 계산하는 공간감지센서를 장착했다. 우크라이나로서는 먼 거리에서 러시아군을 타격할 수 있으므로 타우러스 350K가 매우 유용할 수밖에 없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수차례 지원을 요청했고, 독일 내 일부 정치인들도 이를 지지했으나 독일 정부는 확전 및 기술 유출 위험을 의식해 응하지 않고 있다.
다만 독일이 타우러스 350K를 영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에 인도하고, 동맹국들이 스톰 섀도를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어 유럽 내 타우러스 350K 운영국가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한국도 인식의 전환 필요
한국은 지난 2013년 타우러스 350K 도입을 결정했다. 현재 260여발을 보유하고 있으며 공군 F-15K 전투기에 장착, 유사시 대북 타격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
타우러스 350K는 6m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를 관통한다. 북한 전역에 건설된 수천 개의 지하 시설을 타격, 무력화할 위력을 갖췄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해 KF-21 전투기에 탑재할 국산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완전하게 전력화되기 전까진 F-15K에 있는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공군의 실질적 억제력인 셈이다.
하지만 F-15K는 북한 내륙 공습 외에도 해상 표적 공격, 영공 방어를 위한 근접 공중전, 공격기 엄호를 위한 공중전 등 유사시 수행할 임무가 많다. F-15K에 주어진 부담이 과도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F-15K 59대는 성능개량 사업이 예정되어 있다. 수년간 이어질 개량 사업 기간 동안 공군의 원거리 타격 전력에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KF-16 등의 기종에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장착해서 F-15K의 부담을 완화하고, 전략적 타격력을 강화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타우러스는 지난해 LIG넥스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FA-50 경공격기 탑재용 공대지미사일 공동개발을 진행중이다.
타우러스 350K-2로 불리는 이 미사일은 기존 타우러스 350K보다 크기와 무게를 줄였다. 사거리는 400~500㎞ 정도로 예상된다. FA-50에 탑재가 가능하다면, KF-16도 장착할 수 있다.
공동개발 기간은 당초 3년으로 예상됐지만, 현재는 개발 기간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기존에 적용됐던 기술을 활용하면서 양측이 합의한 요구조건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개발 리스크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국산 전투기의 수출을 돕는 효과도 기대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전투기의 지상 타격능력이 중시되고 있다. 구식 기종이나 소형 전투기도 장거리 타격력을 갖추면, 전략적 억제능력을 보유한 무기로 탈바꿈한다.
우크라이나군이 옛소련 시절 만든 구형 SU-24에 스톰 섀도를 탑재하자,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던 구식 기종이 수백㎞ 떨어진 지상 표적을 타격하는 전략무기로 바뀐 것이 대표적 사례다.
대만도 자국산 IDF(경국호) 전투기에 자체 개발한 사거리 200㎞ 이상인 완첸(萬劍) 공대지미사일을 탑재했다.
F-16보다 성능이 열세인 IDF지만 장거리 타격력을 얻어 중국군이 대만 해협과 가까운 중국 남부에 배치한 방공망 밖에서 중국 공군기지 활주로나 레이더를 무력화하는 전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현재 폴란드 등에 수출될 FA-50은 첨단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AIM-9X 공대공미사일 등을 갖추게 된다. 여기에 장거리 공대지 능력이 추가된다면, F-16 못지 않은 전략적 의미를 얻는다. 해외 전투기 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아지는 셈이다.
KF-21도 구매 대상국에 ADD가 개발하는 공대지미사일과 타우러스 350K-2를 함께 제시해 구매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옵션이 다양해지면 더 많은 잠재 고객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
공군의 전략적 타격력을 한층 높이고 국산 기종의 수출 경쟁력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향후 정부와 군의 정책 결정에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