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 시절 유럽 동맹국들을 심리적으로 피곤하게 만들고 미국의 리더십에 의문을 갖게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작 실행으로 옮겨진 것은 없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과 유럽의 관계에 대한 전혜원(사진) 국립외교원 교수의 진단이다. 트럼프는 임기 초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 카드까지 꺼내들어 유럽 동맹국들을 당황하게 했으나 정작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전 교수는 트럼프가 재집권하더라도 미국의 나토 탈퇴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나토는 철저하게 미국이 중심인 조직입니다. 현행 나토 규정에 따르면 나토에 가입한 국가들은 가입 관련 서류를 미국 정부에 기탁하도록 돼 있습니다. 나토를 탈퇴하려는 회원국 역시 그 의사를 미국 정부에 표명해야 합니다. 미국이 나토를 탈퇴하려면 결국 나토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는 뜻이죠.”
미국이 나토에 머물더라도 유럽 주둔군 규모를 줄이면 유럽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일례로 트럼프는 재임 시절 주독미군 감축을 시도했다. 다만 실행에 옮겨지기 전 조 바이든 행정부로의 정권교체가 이뤄지며 무위에 그쳤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정작 트럼프 집권기에도 유럽 주둔군에 투입되는 국방비는 오히려 늘어났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비슷한 얘기(미군 철수)를 할 수는 있어도 실질적으로 쉽지 않다”며 “미군의 유럽 내 재배치는 가능해도 철수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토 회원국 중에는 미국 말고도 영국·프랑스 두 핵무기 보유국이 있다. 미국이 유럽을 떠나더라도 영국·프랑스의 핵 억지력으로 러시아에 맞설 수 있지 않을까. 전 교수에 따르면 나토를 위한 핵무기 사용과 관련해 미국·영국·프랑스 3국은 서로 다른 원칙을 갖고 있다. 미국은 해외에 핵무기를 배치해놓고 있으며 나토와 공동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의지가 있다. 영국은 나토와 공동으로 핵무기를 쓸 의지는 있으나 모든 핵무기가 자국 안에 배치돼 있다. 프랑스의 경우 핵무기가 자국에 배치돼 있는 것은 물론 오로지 자국의 결정만으로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입장이다.
전 교수는 “핵무기 없는 유럽 나토 동맹국들 입장에선 미국이 빠진다면 영국·프랑스가 핵무기를 쓸지 믿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현재로선 미국의 핵 억지력을 대체할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요즘 유럽에서 “더는 안보를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유럽의 자주국방 실현은 요원하다는 얘기다.
프랑스는 1960년대 샤를 드골 대통령 시절부터 ‘유럽인에 의한 유럽 방위’를 외쳐왔다. 일각에선 이 점을 들어 ‘프랑스 역할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전 교수는 “프랑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군사지원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며 “프랑스의 군사적·경제적 능력에 한계가 있을뿐더러 유럽 이웃나라들도 프랑스를 못 믿는다”라는 말로 회의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