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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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의료인 형사처벌 면제는 의사 달래기… 공공의대 설치해야”

정부가 지난 1일 민생토론회에서 발표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의 연내 추진 계획을 놓고 시민단체가 이를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정부가 추진하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중 하나로, 사실상 의료인 형사처벌을 면제해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단체는 특정 직역을 대상으로 형사처벌까지 면제해주는 것은 일부 비인기 과목 충원을 더 어렵게 만들 뿐더러 사법체계도 흔들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활동가들이 5일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열린 '의료인 형사처벌 면제 중단 및 공공의대 설치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5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의료인 형사처벌 면제 중단 및 공공의대 설치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발표한 의료인 형사처벌 면제 및 필수의료분야 수가 인상은 그간 의료계가 요구했던 내용”이라며 “이름은 종합대책이지만 의사 달래기용 정책 재발”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과대학 정원 2000명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등 핵심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따르면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했으면 피해자 의사에 반해 의료인을 형사 처벌할 수 없고, 피해 전액을 보상하는 종합보험 가입 시에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책임·종합보험을 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본따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도 비슷하게 도입한다는 건데, 운전자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게 돼있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전혀 다르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현재 교통사고가 나면 운전자에게도 과실이 있다고 추정하고 운전자가 자신의 면책 사유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법안대로라면 의료사고 발생 시에는 의료정보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가 직접 의료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경실련 중앙위원회 부의장인 신현호 변호사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으로는 피해자가 고의로 사고를 일으켰다거나 자동차의 구조적 결함으로 사고가 났다고 입증하게 하고 이후 중과실 면책조항이 아니면 면책해준다”며 ”의료사고처리특례법도 적용되려면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인의 과실을 추정하되, 다만 의사가 환자의 자연적 질병 경과로 사망을 막을 수 없었다고 입증하는 경우에 면책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추진한 뒤 정부와 의료계 갈등 지속되자 의료계 달래기용으로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한다고 지적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이번 대책은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 여기 반대하는 의사들을 달랠 정책이 담긴 구조”라면서 “형사처벌 면제와 수가 인상 두 가지 모두 제도적 특혜거나 국민이 낸 보험료를 더 주겠다는 보상 강화 방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의대 정원을 최소 2000명 확대하고 공공의대 신설을 함께 추진해야 적절한 정책패키지“라고 덧붙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활동가들이 5일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의료인 형사처벌 면제 중단 및 공공의대 설치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신 변호사는 신경외과, 흉부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 현재 잘 충원되지 않는 과목으로는 더 기피가 뚜렷해지고 성형외과나 피부과, 안과 등 미용·상업적 목적 진료가 많은 과목에 쏠림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변호사는 “그나마 미용 목적으로 수술하다가 사망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는 과에 형사처벌 책임까지 없애주면 상업화 쪽으로 의사들이 더 몰리고 소신껏 현재 기피과에 가는 건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국 이미 의사와 환자 관계가 균형을 잃은 상황에서 환자 권리는 더 무시될 수 있단 것이 경실련 주장이다. 김성달 경실련 사무총장은 “이미 의사와 환자, 의사와 소비자 관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의료인 형사처벌 면제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과도한 특혜”라며 “정부가 의료인에 더 큰 특혜를 주고 환자 권리를 더 후퇴시키는 정책을 발표한 것을 매우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이번에 제시된 정부·지자체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은 의대생이 일정 기간 동안 그 지역에서 근무하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이미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현행 공중보건장학제도에 재정 지원을 더 강화했을 뿐이며, 필수의료 수가 인상을 위해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대책은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국민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