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5일 “재임 중에 사소한 실수는 있었을지라도 의도적으로 제게 부끄러운 일이라든가 국민 앞에 부끄러운 일은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떳떳하고 당당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대구의 한 호텔에서 자신의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 출간을 기념해 연 북콘서트에서 진행자가 ‘감옥에서 인고의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한 희망은 뭐였나. 많은 억울함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감내했나’라고 묻자 “힘들지 않았고 억울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그게 어려운 시간을 지켜내는 데 국민의 위로와 더불어 큰 기둥 같은 힘이 됐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그는 “다만 제가 너무 가까이 있던 사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국민께 실망을 드렸던 게 참 저를 힘들게 했다”며 “어쨌든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담담히 견뎌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은 “많은 분께 받은 큰 사랑을 어떻게든지 갚으려 했는데 탄핵으로 중단되고 보답을 제대로 못 해서 안타깝고 죄송할 뿐”이라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비대위원장 화환…“800명 참석”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올림머리를 하고 검은색 재킷에 흰색 바지 정장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약 90분간 평소 일상생활부터 대통령 재임 기간 업적,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까지 주제를 넘나들며 의견을 밝혔다.
회고록 집필 계기에 대해선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으로서 아쉬웠던 일에 대해서는 아쉬운 대로, 이거는 잘한 결정이라 생각한 것도 그대로 써서 밝힘으로써 미래세대에도 교훈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집필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정치 일선은 물러났지만, 국민을 위해 앞으로 힘닿는 대로 역할을 하고 싶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저는 정치 일선을 떠났고 또 정치를 다시 하지 않을 것”이라며 “제가 재임 중에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아쉬움은 있고 누군가가 이제 그것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고 했다.
그는 “정치는 하지 않겠지만, 제가 국민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 크고 감사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제가 할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서 보답해 드리겠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건강 문제, 회고록 집필 때문에 밖으로의 외출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국민 여러분을 자주 만나려고 한다”며 “시장을 다니거나 주변에 관광지 이런 데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많이 뵐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북콘서트 무대에는 수감 시절 유일하게 면회를 허용했던 측근 유영하 변호사와 허원제 정무수석이 함께했다. 유 변호사는 이번 총선에서 대구 달서갑에 출마하겠다며 국민의힘에 공천을 신청했다. 유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을 말하다 눈시울을 붉히자, 박 전 대통령은 “목이 자주 메시는 것 같다. 그동안 하도 기가 막힌 일이 많아서”라고 위로하기도 했다.
행사에는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박흥렬 전 경호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 박근혜 정부 인사 일부가 초청받아 자리했다. 관객은 주최 측 추산 800명이었다. 행사장 앞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 놓였고,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장동혁 사무총장,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등 명의의 화환도 있었다.
◆회고록에는 “박 전 대통령 10년간 정치 일대기 담겨”
회고록에는 박 전 대통령이 4년9개월의 수감 시절 도중인 2021년 늦가을에 쓴 자필 메모를 처음 공개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재임 시절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지도부였던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에 대한 일화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18대 대선 이후인 2012년 말부터 탄핵, 수감 생활을 거쳐 2022년 3월 대구 달성군 사저에 입주하기까지 약 10년간 박 전 대통령의 정치 일대기가 모두 수록됐다는 평가다.
박 전 대통령은 2022년 대선을 반년가량 앞둔 2021년 늦가을 옥중에서 자필 메모를 남겼다. 그는 2017년 10월16일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된 후 더 이상 재판 절차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면서 “그 후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했던 일들이 적폐로 낙인찍히고 맡은바 직분에 충실하게 일한 공직자들이 구속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저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고 적었다.
그는 또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한 이들마저 모든 짐을 제게 건네주는 것을 보면서 삶의 무상함을 느꼈다”며 등을 돌린 옛 측근들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이어 “하지만 이 모두 정해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겠다. 2006년 (커터칼) 테러 이후의 저의 삶은 덤으로 주어져서 나라에 바쳐진 것이라 생각했기에 제 일신에 대해선 어떠한 미련도 없다”며 “이제 모든 멍에를 묻겠다.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는 마음도 없다. 서로를 보듬으면서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주기 바란다”고 썼다.
박 전 대통령은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지고 가면 해결이 될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 메모를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시절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전 의원 관련 일화도 소개했다. 2015년 4월 자신의 비서실장 출신인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정부 기조를 비판하자, 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하자”고 그를 직격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연설을 TV 중계로 직접 봤는데, 그의 발언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연설 내용도 문제가 많았다”며 “창조경제는 폄훼하면서 당시 야당의 소득 주도 성장론은 환영한다고 하니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2015년 5월 당시 유 원내대표가 공무원 연금 개혁 협상의 합의 조건으로 국회의 시행령 수정 권한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에 야당과 합의했다는 얘기가 들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절대 안 된다”고 전달하려 했으나, 유 원내대표가 연락을 피했다면서 “어처구니없었다”고 비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당일 상황에 대해 “담담한 마음으로 비공개 국무회의를 소집했는데, 함께 고생한 국무위원들의 얼굴을 보자 감정이 북받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슴 속으로 피눈물이 흘렀다”고 적었다. 또 ‘탄핵안 찬성 여당 의원 62명 명단’을 지라시로 접했다며 “정치란 참으로 무정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친박 무소속 연대’ 소속이었고 이후 친박임을 자처하며 활동해온 3선의 A의원”, “2012년 총선 때 지원 유세를 간곡하게 부탁해 곁에서 도왔던 수도권 재선인 B의원”, “경기 지역에서 시장통을 구석구석 돌며 유세를 도왔던 재선 정책통 C의원”, “역시 ‘친박 무소속 연대’ 소속으로 친박임을 강조하던 4선의 D의원”을 나열했다.
◆국정농단 사건 핵심 최서원과 인연도 되짚어
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와 인연도 복기했다. 그는 “예전에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나와 최 원장의 인연을 부각하기 위해 1970년대에 그녀가 내 곁에서 안내하는 듯한 영상을 내보낸 것을 봤다. 하지만 당시 나와 최 원장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며 “최태민 목사의 딸이라고 소개를 받았던 것 정도는 기억난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최 씨와 교류하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청와대를 나와 서울 장충동 집에서 살았던 1990년대 후반이라고 기억했다. 그는 “여성 혼자 살면서 정치인 생활을 하다 보니 개인적 도움이 필요한 때가 종종 있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 승리로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최씨에게 필요한 짐 정리 등을 부탁했고, 재임 기간에는 주로 의상 구매 등 개인적 용무를 살폈다고 했다. 다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옷값은 전부 내 개인 돈으로 지불했다. 그녀는 내게 의상실을 소개하고 옷을 대신 구입해 가져왔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 씨가 독일에 설립해놓고 삼성에서 송금받은 유령 회사 ‘비덱스포츠’와 관련해 직접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전화했지만, “최 원장은 내게 ‘대통령님, 비덱이 뭔가요?’라고 반문했다”고 떠올리며 “이것이 최 원장과의 마지막 통화였다. 그녀가 비덱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내게 말을 했던 것을 떠올리면 지금도 전율이 인다”고 적었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었다고 공개했다. 그는 “미르·K스포츠 재단의 이사진을 구성할 때 최(서원) 원장으로부터 이사진을 추천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명단을 안종범 당시 청와대 수석에게 넘기면서 전경련에도 일러주라고 했다”면서 “하지만 추천 명단을 안 수석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을 검찰 조사 때는 부인했었다. 검찰이 내 진술은 하나도 믿어주지 않고 나를 뇌물죄의 주범처럼 단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중에 법정에서 차분하게 전후 관계를 설명하면서 검찰에서 부인한 내용을 바로잡을 생각이었다”며 “내가 검찰 조사 때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은 것은 이 대목이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매주 3∼4회 진행됐던 재판 과정에 대해선 “야만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재판부는 내 건강을 신경 쓰기보다는 어떻게든 구속영장 만료 기간인 10월16일 이전에 판결을 내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듯했다”고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