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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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10대 총기난사범 모친 유죄…“정신적 문제 방치, 사실상 범행 방조”

동물 고문하는 등 문제 있는 정신 상태 방치, 직접 총 사주고 긴급호출 받은 학교엔 함구
미국 미시건주 옥스포드 고교 총기난사범 이선 크럼블리(왼쪽)와 그의 모친 제니퍼 크럼블리. 디트로이트=AP연합뉴스

 

미국 고등학교에서 총기로 다른 학생을 살해한 10대 소년의 모친이 살인죄 유죄 평결을 받았다. 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 직접 관련이 없는 부모의 살인 혐의가 인정된 것은 미국에서 처음이다.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시간주(州) 오클랜드 카운티 법원 배심원단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제니퍼 크럼블리(45)에게 유죄를 평결했다.

 

피고인은 지난 2021년 오클랜드 카운티 옥스퍼드 고교에서 학생 4명을 숨지게 한 이선 크럼블리의 어머니다. 15세였던 이선은 범행 당시 1급 살인죄 등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총격 사건에 직접 관련이 없는 모친까지 살인 혐의로 기소한 건 아들의 범행 의사를 인지하면서도 예방 조처를 하지 않아 사실상 범행을 방조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총격 사건 발생 직전 이선의 담임교사는 부모를 긴급 호출했다. 이선이 수학 과제물에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는 사람을 그린 뒤 “목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도와달라”라고 쓴 것을 발견했기 때문.

 

살인자는 이밖에도 “사방이 피다”, “내 삶은 쓸모없다”, “세상은 망했다” 등의 말을 써놓았다.

 

총격범 크럼블리가 범행 당일인 2021년 11월 30일 오전 과제물에 남긴 낙서.미시건주 재판부 자료

 

교사는 즉각 부모인 제임스와 제니퍼를 학교로 불렀지만, 둘은 이선에게 총을 사줬다는 사실, 아이가 학교에 총을 가져간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부부는 별일 아니라는 듯 그대로 학교를 떠났고, 이선은 약 한 시간 뒤 친구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참사를 방치했다는 판결이 나온 이유다. 검찰은 “부모로서 총을 사준 사실만 알렸어도 총이 있는지 확인해 뺏었으면 그만이었던 사건”이라면서 “자식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총을 사줘 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평소 부모로서도 빵점이었다. 약물 중독에 서로 바람을 피우기 바빠, 평소 정신적 문제가 있던 아이를 방치했다.

 

이선은 10대가 되면서 작은 동물들을 고문하길 즐기고 어린 새의 머리를 유리통에 담아 학교에 갖다 놓는 등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역시 배심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검찰은 “부모의 무관심으로 아들의 정신적인 문제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악화했고, 결국 총기 참사를 유발했다”며 ‘부모님은 정신과 상담이나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 말을 무시한다’는 내용이 적힌 이선의 일기장을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부친에 대한 평결은 다음 달에 내려질 예정이다. 부친은 범행에 사용된 권총을 아들과 함께 구매했고, 권총을 보관한 침실 서랍을 잠그지 않았다.

 

한편 미국의 일부 법률 전문가들은 살인에 대한 부모의 직접적인 책임을 인정한 이번 평결이 법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프리 슈워츠 미시간 쿨리 로스쿨 교수는 “자녀가 범죄를 저지를 때 집에 있는 각종 물건을 사용한다면 부모도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다은 온라인 뉴스 기자 dad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