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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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脫한국’ 러시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렸던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1909∼2005)는 기업의 존재 이유를 ‘이윤 창출’로 꼽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였던 영국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1919∼2013)는 기업의 본질을 ‘거래 비용’으로 풀어냈다. 시장에서의 거래에는 정보수집비 등 다양한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이라는 조직이 형성되었다고 했다.

현대사회 들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의 수명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상품을 만들고도 팔 시장이 없거나 판매 자체가 규제에 막히면 다른 시장을 찾는 건 당연한 이치다. 국내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비대면 플랫폼 업체들의 해외 엑소더스가 줄을 잇는 이유다. 비대면 진료1위 플랫폼 닥터나우는 일본에 법인을 설립하고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 서비스에 나선다고 밝혔다. 라인헬스케어, 아마존헬스케어 등 빅테크 업체들이 이미 일본에서 원격의료 인프라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2022년 베트남에서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서비스를 선보인 룰루메딕도 영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내 비대면 의료 플랫폼 운영사인 메디히어는 본사를 미국으로 옮길 추세다. 규제로 인해 국내 사업이 지지부진해서다. 우리와 달리 일본·베트남은 비대면 진료와 약 처방 배송 등 규제가 없다.

국내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처한 현실은 참담하다. 코로나19 시기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지난해 6월 초진환자 이용 불허, 약배송 금지 등을 내건 시범사업으로 전환되면서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과 준비 부족, 과도한 규제 탓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말 야간과 휴일, 응급의료 취약지에서 초진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지만 ‘반쪽짜리’에 그친다. 진료를 받아도 도서벽지 환자나 희귀질환자 등을 제외하고 약은 방문 수령이 원칙이다. 비대면 진료 참여 약국도 36%에 그쳤다. 대체 약이 없거나 처방전 자체를 거부해 ‘약국뺑뺑이’도 심각하다고 한다.

고령화와 기술의 발전은 원격의료 사회를 재촉한다. 국내 규제가 비대면 진료 혁신 플랫폼의 발목을 잡으며 해외시장을 키운다는 비판을 들어선 안 된다. 이 참에 의료계와 약사계의 카르텔부터 끊어내야 하지 않을까.


김기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