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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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감세정책의 부작용

“있는 사람들한테 더 세금을 뜯어내야지 하는데, 그게 중산층과 서민을 죽이는 것.”

 

지난달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한 발언이다. 고가 차량에 대한 중과세와 주택에 대한 높은 보유세가 합리적으로 보일 순 있지만 결국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 중산층과 서민의 일자리를 위축시킨다는 취지다.

 

이희경 경제부 기자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생각은 실제 각종 감세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완화한 데 이어 올해 들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한도 상향과 함께 상속세 완화 방침까지 시사했다. 여기에 24조원에 달하는 국민·기업 대상 부담금 역시 도마에 올린 상태다.

 

감세 기조는 이번 정부의 경제정책을 대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범 후 대규모로 단행된 2022년 세제 개편을 통해 법인세 1%포인트 인하가 이뤄졌고, 2023년 세법 개정에도 영상 콘텐츠 제작비용 세액공제 확대 등 다수의 감세안이 담겼다. 

 

감세 기조의 배경에는 세금이 각종 경제적 비효율을 발생시킨다는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부담 수준이 높은 법인세가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금투세 등은 주식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촉발한다는 인식이다.

 

다만 감세 일변도 정책의 부작용이 만만찮을 수 있다. 먼저 단기적으로 정부가 강조한 ‘건전재정’이 위협받을 수 있다. 정부는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중을 국내총생산(GDP)의 3% 내 관리하는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 중인데, 뜻하지 않은 세수 감소로 이 비율은 올해 -3.9%를 기록한 뒤 내년에도 -3%를 초과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2022년 세제 개편으로 2023~27년 5년간 64조4081억원(국회예산정책처·누적법 기준)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고, 지난해 국회에서 의결된 2023년 세법 개정으로 2024~28년 3조6733억원(정부 추계)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중기적으로 볼 때 윤 대통령이 약속했던 공약마저 이행 여부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 윤석열정부는 110대 국정과제 예산으로 209조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연간 20조원가량의 세수 증가분이 주요 재원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56조4000억원의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가 발생한 데다 올해 역시 세수 전망이 밝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공약 이행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 셈이다.

 

합계출산율 0.7명(지난해 2‧3분기 기준)으로 대표되는 인구 변화와 공급망 불안, 인공지능(AI) 시대로의 전환 등을 감안하면 큰 정부로의 이행은 필수적이다. 이에 발맞춰 세입 기반 확충 방안도 언젠가는 실시돼야 한다. 따라서 정부 감세정책의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세금은 좋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굳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세금을 적대시하는 기조는 장기적으로 증세 등 재정 확충 논의를 더 어렵게 할 수밖에 없다. 한번 건드리면 변화가 힘든 ‘경직성’을 가진 게 조세 제도다. 각종 조세감면 제도의 일몰이 쉽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감세정책은 신중하고 또 차분히 추진돼야 한다. 


이희경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