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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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우리] 북·러 밀착과 위기의 한·러 관계

한·러 아슬아슬한 외교설전 오가
이면에선 레드라인 넘지 않길 바라
러는 北에 군사기술 제공 멈추고
韓, 우크라 무기공급 신중 접근을

평양과 모스크바 간 밀착이 심상치 않다. 양국은 지난해 9월 13일에 개최된 푸틴·김정은 정상회담 이후 빠른 속도로 유대를 강화해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양자 협력 강화 및 푸틴의 답방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최선희 외무상은 지난 1월 중순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의 면담, 라브로프 장관과의 회담, 미사일, 인공위성 관련 연구소와 제작 공장 방문 등을 통해 양국 간 군사기술 제휴 문제를 러시아 측과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9·13 북·러 정상회담을 전후해서 북한이 상당량의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했다는 의혹이 야기된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서방 측은 다양한 정황 증거들을 제시해왔다. 지난해 10월 중순 존 커비 미국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인공위성 사진에 포착된 나진항 부두의 물동량 변화를 근거로 북한이 정상회담을 전후해 컨테이너 1000개 이상 분량의 군사 장비와 탄약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장덕준 국민대 교수·유라시아학

이러한 북·러 무기거래와 군사기술 협력 의혹은 당연히 한국의 안보 우려를 증폭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20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만약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대량살상무기(WMD) 능력 강화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얻게 된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로 규정한다고 천명했다.

이에 앞서 푸틴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한 바 있다. 2022년 10월 국제 러시아 전문가 포럼인 발다이클럽 토론회에서다. 그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한다면 한·러 관계는 파탄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이 직접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레드라인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냉각된 한·러 관계가 북·러 간 군사협력 강화로 더 악화되었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하순 한국은 건설중장비, 이차전지, 항공기 부품 등 군용으로의 전환 가능성이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대러 수출 금지 품목을 확대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한 보복 조치를 예고하는 등 한·러 관계는 더 경색되었다.

급기야 지난 1일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발언까지 문제 삼았다. 지난달 31일 윤 대통령이 북한의 ‘핵 선제 사용 법제화’를 비판한 것에 대해 “노골적 편향”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그러한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에 대해 북한의 무력 도발이 오히려 역내 긴장의 원인이라는 명백하고도 객관적인 사실을 도외시한 “무지하고 편향된 궤변”이라고 비난했다. 외교부는 더 나아가 “러시아의 지도자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군사작전’이라고 지칭하는 것이야말로 국제사회를 호도하려는 억지”라고 맞받아쳤다. 줄타기 곡예처럼 한·러 외교관계가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두 나라가 그러한 거친 언사를 동원해 외교적 설전을 벌이는 데는 서로 상대방이 레드라인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한국에 대한 노골적인 경고와 거친 외교적 공세 속에서도 모스크바는 서울과의 협력 재개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4일 크레믈에서 열린 21개국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푸틴 대통령은 한국과 관계 회복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러시아가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더 이상 관계 악화를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러시아에 대해 우리 안보에 결정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군사기술을 북한에 제공하지 말 것을 촉구해야 한다. 한편 러시아가 레드라인으로 생각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용 무기 제공에는 신중해야 한다. 그리하여 미래를 위한 외교적 공간을 남겨 두어야 한다. 우리 근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러시아가 작지 않은 영향력을 끼쳐왔음을 상기한다면 모스크바와의 관계를 유지, 관리,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음은 자명하다.

 

장덕준 국민대 교수·유라시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