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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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챗GPT로 만든 가짜 탄원서

지난해 6월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 2명이 법원 판결로 5000달러(약 664만원)씩 벌금을 문 일이 있었다. 이들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로 쓴 변론서를 냈다가 담당 판사한테 들통이 났다. 변론서에 인용된 판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의문을 품은 법관의 매서운 추궁에 변호사들은 잘못을 실토했다. 둘 중 한명은 경력 30년의 베테랑 법조인이었다. 그는 “법률가로서 내가 직접 검증하지 않고 챗GPT에만 의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다시는 서면 작성에 AI를 활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일본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의 올해 수상작이 구설에 올랐다. 작가가 “소설의 약 5%는 챗GPT가 만든 문장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일부 독자는 “기술의 도움을 받지 않은 다른 작가들에게 무례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일종의 ‘반칙’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문학상 선정위원회 측은 “작가의 AI 사용은 문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AI를 활용한 예술작품의 가치 인정 여부는 요즘 일본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논란거리다.

탄원서는 범죄 혐의로 수사나 재판을 받는 지인을 위해 제3자가 선처를 호소하며 경찰, 검찰 또는 법원에 내는 문서다.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제대로 잘 써서 제출하면 처벌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탄원서를 검색하면 일정한 금액을 받고 작성 기술을 알려주거나 아예 대신 써준다는 광고가 넘쳐난다. ‘진정성’이 제일 중요한 탄원서를 이렇게 만들어 낸들 검판사와 경찰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최근 챗GPT로 쓴 가짜 탄원서를 검찰에 냈다가 되레 혐의가 늘어난 이의 사연이 전해져 눈길을 끈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기소돼 재판 도중 법정구속된 김모(32)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보석을 희망하며 지인 명의로 된 탄원서를 제출했는데 담당 검사가 보니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조사 결과 챗GPT를 이용해 만든 가짜 서류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김씨를 사문서 위조, 위조 사문서 행사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고 하니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온 셈이다. AI 기술의 진보가 신종 범죄 등장으로 이어지는 세태가 씁쓸하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