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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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원 엇박자에 공화당 내분 심화… 기능 마비된 美 의회

주요 안보 의제 놓고 파열음

우크라·이스라엘 지원 예산 담긴
총액 1180억달러 규모 패키지 법안
민주·공화당 협상 대표 협의 불구
공화의원 대부분 반대 사실상 좌초
국경통제 문제 정치적 득실 계산
공화 다수당인 하원은 더욱 혼란
대선 전략·야당 분열 등 작용 관측

미국 의회가 상·하원을 가리지 않고 우크라이나 지원, 국경 통제 강화 등 주요 안보 의제 법안을 제때 처리하는 데 실패하며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선 전략과 결부된 여·야의 대치와 야당인 공화당의 내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7일(현지시간) 미 상원은 금주 초 공개한 1180억달러(약 158조원) 규모의 안보 패키지 법안에 대한 정식 표결에 앞서 토론 종결을 위한 투표를 실시했으나 찬성 49표에 그쳐 의결정족수 60명을 11표 차로 채우지 못했다. 반대는 50표가 나왔다.

미치 매코널 미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AP뉴시스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은 지난 4일 민주당과 공화당 협상 대표의 협의를 거쳐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지원, 국경 통제 강화 등이 담긴 패키지 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날 표결에서 공화당 의원들은 대부분 반대표를 던졌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수뇌부가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패키지 법안은 상원에서 표결을 통과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좌초된 것으로 평가된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공화당이 반대하는 국경 통제 관련 내용을 빼고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지원안만 추려서 처리하는 대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더힐은 보도했다.

 

최근 미 의회는 주요 안보 의제를 놓고 여·야는 물론 각 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나뉘어 사실상 기능이 마비된 상태다.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국경 통제 문제의 경우 정치적 득실 계산이 여·야의 합의 도출을 가로막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패키지 법안에는 일주일 동안 불법 입국자 수가 4000명을 넘으면 국토안보부가 입국 허용을 중단할 수 있고, 5000명을 넘으면 중단이 의무화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드는 미국 남부 국경의 혼란을 완화하려는 목적이다.

 

하지만 국경 규제 강화를 지지하는 공화당이 불법 이민 문제를 대선 때까지 끌고 가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김 때문에 오히려 이번 법안을 반대하고 있다고 NBC방송은 지적했다. 슈머 원내대표도 부결 직후 “트럼프는 혼란을 원할 뿐 국경 (통제의) 성공을 원치 않는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에서도 이 같은 국경 봉쇄가 지나치게 가혹하다거나 이스라엘 군사 지원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나오면서 5개의 이탈표가 생겼다고 온라인매체 액시오스는 전했다.

 

하원에서는 공화당 내부 분열로 최근 주요 법안이 줄줄이 부결됐다. 공화당은 하원 다수당이지만, 민주당과의 차이가 7석에 불과해 219명의 의원 중 단 3명만 이탈해도 법안 단독 처리가 불가능하다.

 

전날 하원은 공화당이 주도한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에 대한 탄핵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4명의 이탈표가 나오며 찬성 214표, 반대 216표로 부결됐다. 공화당은 지난달부터 마요르카스 장관이 국경 통제 실패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탄핵안을 밀어붙여 왔으나 이번 부결로 완전히 체면을 구기게 됐다고 CNN은 전했다. 하원은 우크라이나 지원 내용을 뺀 이스라엘 단독 지원안도 표결에 부쳤지만, 공화당 내 14명의 이탈자가 나오면서 마찬가지로 부결됐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AP연합뉴스

공화당 의원들의 잇따른 이탈에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의 전략 부실과 리더십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다. 패트릭 맥헨리 공화당 하원의원(노스캐롤라이나)은 “두 번의 (표결과) 이를 연달아 치르겠다는 선택 모두 큰 실수였다”며 “존슨 하원의장은 자신의 실수로부터 배워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 상원의원(유타)은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었는데 지금은 불가능한 것의 예술이 됐다”며 의회의 혼돈을 꼬집었다.

 

계속되는 미 의회의 대치 상황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우크라이나다. 오는 24일 개전 2주년을 맞이하는 우크라이나는 이미 미국으로부터 받은 군사 지원금이 고갈된 상태로 러시아와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 의회 수뇌부와 만나고, 이날 앞서 한·중·일 등 9개국 주재 미국대사가 우크라이나 지원의 절박성을 호소하는 서신을 의회 지도부에 보냈지만 의회 난맥상을 극복할 수 없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