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료계 간 기싸움이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의료계 집단행동 예고에 의사 면허 취소 등 법적 조치까지 거론했다.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절대 의사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에 나섰다. 대한한의사협회 역시 정부 발표에 부정적 입장을 표하며 “한의사를 의료 사각지대에 즉시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설 연휴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휴업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될 전망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조만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집단행동의 방식과 시점을 결정할 방침이다. 의협은 설 연휴 직전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비대위 전환 방침을 정하면서 “정부가 싫증 난 개 주인처럼 목줄을 내던지는 만행을 저질렀다” 등 격한 표현으로 투쟁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개원의 중심 단체인 의협뿐 아니라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에서도 집단행동 움직임이 일고 있다. ‘빅5’(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상급종합병원 전공의들은 자체 설문조사를 통해 집단행동에 참여하겠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엄정 대응’ 방침을 재차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의대 증원 규모를 발표하기 전부터 파업 돌입 즉시 업무복귀 명령을 내리고 불응 시 징계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전공의들 사이에서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기 전 집단으로 사직서를 낼 움직임을 보이자 전공의를 교육하는 수련병원에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도 내렸다. 의사 면허가 박탈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법대로 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의사들은 반발하는 모양새다. 최근 정부가 전공의 단체행동에 대비해 개인 연락처를 취합하고 경찰까지 동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격앙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 발표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해온 노환규 전 의협회장은 “대체 의사를 뭘로 보는 거냐. 의사는 이렇게 겁박해서는 안 된다”며 “국민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잘못된 의료정책을 저지하는 것 말고 집단 휴진의 정당한 사유가 뭐가 있겠나”라고 복지부의 집단행동 금지명령 등을 비판했다.
노 전 회장은 “병원별 담당자를 배치하고 경찰까지 동원한다니 겁을 주면 의사들이 지릴 것으로 생각했나보다”며 “가장 염려하는 건 의사들이 파업이 아니라 의사들의 허탈감이다. 진료에 집중해야 할 의사들이 허탈감과 분노에 빠질 때 이는 진료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환자를 향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듭 정부를 향해 “공산국가라면 가능하겠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절대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며 “의료대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한의사들 역시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려도 당장의 의료인력 수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필수의료 분야에 한의사 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최근 입장문을 통해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려도 10년 뒤에나 공급이 시작돼 당장 의료인력 배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한의사를 의료 사각지대에 즉시 투입해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의협은 “한국의 인구증가율을 고려하면 2035년 이후 인구 감소는 자명하다. 정원을 늘려 의사 인력 수급을 조절하는 정책은 발등의 불을 끄기에는 역부족”이라며 “필수의료 분야 정책에 한의사 참여를 확대하고 지역의사제에 한의사를 포함, 미용 의료 분야 특별위원회에 한의사 참여를 보장하고 시술 범위를 모든 의료인으로 확대해달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