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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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스마트 의료 최강국’ 골든타임 놓칠텐가

동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거울 같았다. 인공지능(AI) 등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이 스마트 거울은 보는 이의 표정과 몸짓을 읽고, 감정을 살핀다. 낯빛이 어두워 보이면 격려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착용하고 걸을 수 있는 초경량 웨어러블 로봇, 음식물의 영양소와 칼로리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스캐너도 인상적이었다.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통신기술(ICT) 전시회 CES 2024에서 목격한 ‘신문물’이다. 온갖 최신 기술의 향연 속에서도 특히 눈길을 끈 건 ‘디지털 헬스케어’(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한 건강·의료 기술 분야) 관련 부스들이었다. 화려함은 상대적으로 덜했지만, 관객들의 관심과 참여도는 웬만한 대기업 부스 못지 않았다.

 

김주영 사회2부 기자

얼리어답터(신제품을 남들보다 일찍 사용하는 사람)와 거리가 멀고 소문난 기계치인 기자도 ‘건강’ 앞에서는 발걸음이 절로 향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부스가 몰려 있는 전시장에선 유독 한국 기업과 한국인 직원을 많이 마주했다. 올해 CES에서 혁신상을 받은 한국 기업 116곳 중 헬스케어 분야 기업이 30곳(25.9%)이라는 분석 결과가 실감났다.

 

우리나라는 분명 스마트 의료를 포함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국가다. 그러나 발전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굵직한 현안마다 의료계의 강력 반발과 해묵은 규제들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스마트 의료의 대표적 예인 비대면 진료 등 원격 의료는 정부 시범사업으로 이제야 첫발을 뗀 단계다. 그나마도 법 개정안 통과 전망은 어둡다. 정부가 드라이브를 건 의대 정원 확대의 경우, 의사들이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지난달 CES 개막 전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대표단에게 사전설명 강의를 한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는 “전 세계에서 2년에 한 번씩 ‘컨베이어 벨트’에 들어가 생체 데이터(국민건강검진)를 남기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생성형 AI’로 활용할 수 있는 빅데이터를 갖고 있으면서도 관련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총력전을 펴는 경쟁국들과 대조된다. 한국이 ‘스마트 의료 최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CES에선 한 미국 기업의 인공심장박동기가 몇 안 되는 최고 혁신상의 영예를 안았다. 부정맥이 있거나 심장 박동이 불규칙한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존 심박동기의 10% 크기로 건전지보다 얇지만 배터리 소모량은 현저히 적다. 수 년 전 아버지를 갑작스런 심장 질환으로 여읜 터라 기술 발전 속도가 괜스레 야속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 외에도 의료 기술 진보가 절실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 병원을 가기 힘든 고령자나 도서벽지 주민들, 난치병 환자 등이다. 매일 고사리손으로 자신의 배에 ‘셀프주사’를 놓아야 하는 소아당뇨 환아들도 해당된다.

 

정부가 할 일이 많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상대로 설득과 의견 수렴에 나서고, 일단 방침을 정한 뒤에는 후퇴해선 안 된다. 불필요한 규제도 적극 발굴해 혁파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민생토론회에서 “대한민국의 의료 산업과 디지털 헬스케어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릴 자신이 있다”고 했다. 허언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김주영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