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세수 부족 등으로 재정을 소극적으로 운용한 결과 경제 성장에 기여도가 역대급으로 낮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작년 56조원이 넘는 세수 결손이 불거진 상황에서 쓰지 않은 불용예산 규모마저 45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의 구성 요소는 민간소비, 투자, 정부소비, 순수출(수출에서 수입을 뺀 비용) 등 네 가지인데, 한 축인 정부가 작년 들어 지출과 투자 등을 줄이면서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GDP가 연간 1.4%(속보치 기준) 성장한 가운데 이에 대한 정부의 기여도는 0.4%포인트(원계열 기준)에 그쳐 2014년(0.4%포인트)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정부의 소비가 작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0.4%포인트 끌어올리는 데 그쳤다는 얘기다.
정부소비는 정부가 공공 서비스 등을 위해 집행하는 모든 비용 지출과 투자를 가리키며, 예산 집행도 이에 포함된다. 공무원 임금 지급,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비용 등도 모두 정부의 소비 활동으로 포함된다.
정부소비는 우리 GDP 성장의 큰 축 중 하나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3 대한민국 경제’에 따르면 2022년 대한민국 GDP 2162조원 중 정부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인 406조원이었다.
정부소비는 2019년 1.6%포인트를 기록한 뒤 5년 연속으로 하락세다. 특히 윤석열정부가 긴축 재정 기조를 강화한 지난해 1분기 1%포인트(이하 직전 분기 대비 기준)를 기록한 뒤 2분기 0.3%포인트, 3분기 0.2%포인트로 점차 낮아지다 4분기에는 0%포인트를 기록했다. 기획재정부는 “기저효과에 주로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정부의 성장 기여도가 0%포인트로 전락한 것은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0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정부가 지출을 줄이면 승수효과를 일으켜 국가 전체의 부를 더 감소시키는 결과를 맞는다. 승수효과는 경제활동 과정에서 투자가 이뤄지면 더 많은 수요가 창출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2019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정부 지출 승수효과가 1.27(5년 누적 기준)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예산 지출 10조원을 줄였다면, GDP는 12조7000억원 줄어든다는 얘기다.
다만 GDP 대비 50% 수준인 국가채무를 감안하면 재정 건전성 확보와 정부소비를 통한 경제 성장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만족하도록 예산을 융통성 있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건전성에 방점을 두는 예산정책은 맞다고 본다”면서도 “취약계층이나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대책 등은 좀 더 두텁게 할 필요가 있으며,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면서 지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재정 건전성 경직성을 없앨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