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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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 ‘주주행동주의’ 올해도 계속? 外 [한강로 경제브리핑]

단순 투자가 아닌 경영진을 상대로 권리를 적극 행사하는 ‘주주행동주의’를 대표하는 펀드와 소액주주연대 등의 주주권 행사 타깃이 된 국내 기업의 수가 전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 책임원칙)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이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왕성해진 주된 요인으로 분석된다. 정부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개선을 위해 주주 환원 강화에 나선다고 강조하고 있어 이번 주총 시즌에도 주주행동주의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작년 주주행동주의 73社서 발생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영국 런던에 소재한 글로벌 기업 거버넌스 리서치 업체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는 지난해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을 집계한 연례 보고서를 이달 중순쯤 발간할 예정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 73곳을 대상으로 주주행동주의 캠페인 91개가 일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과 일본,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수치다.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 산하 데이터 분석기관 인사이티아에 따르면 한국의 행동주의 캠페인은 최근 1∼2년 새 급증했다. 2020년에는 대상 기업이 10곳에 불과했지만 2021년 27곳, 2022년에는 49곳으로 뛰었다. 인사이티아는 아시아권 중 일본과 한국에서 특히 2020년대 들어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이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한국에서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이 왕성해진 원인으로는 제도 개선이 첫손에 꼽힌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지난해 9월 ‘주주행동주의펀드 역할 확대에 따른 시장영향’ 보고서에서 “오랜 기간 주주행동주의 펀드 활동은 외국계 헤지펀드에 의해 주도됐다”며 “2016년 스튜어드십코드 제도가 국내 도입됐고, 2020년 12월에 감사위원 분리 선출, 최대 주주 의결권 3% 제한 제도 도입이 국내 자본에 의한 주주행동주의 펀드 활성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도 주주행동주의 기세는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티오브런던인베스트매니지먼트,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와 국내 안다자산운용 등 국내외 헤지펀드는 최근 삼성물산에 배당금을 늘리고 자사주를 매입하라는 내용의 주주제안서를 제출했다. 삼성 그룹의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은 보유 자사주 전량을 3년에 걸쳐 소각하고 보통주당 2550원을 배당하기로 했는데, 이들 행동주의 펀드는 “추가 자사주 매입이 동반되지 않아 충분하지 않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 중 하나인 얼라인파트너스도 국내에 상장한 은행금융지주 7곳(KB·신한·하나·우리·JB·BNK·DGB)을 대상으로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주주 환원율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행동주의 펀드의 제안에 그간 소극적으로 응대해온 기업들은 정부의 주주 권익책 강화 행보에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를 소각하는 등 적극 호응하고 나섰다.

 

현대차는 지난해 기말 배당금을 보통주 기준 주당 8400원으로 결정, 역대 최대 금액으로 책정했다. 현대차의 2023년 연간 배당은 2·3분기 합계 3000원을 포함해 전년 대비 63% 증가한 1만1400원이 됐다. SK이노베이션은 2011년 회사 출범 후, HD현대건설기계는 2017년 현대중공업에서 분사 후 처음으로 각각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 SM엔터테인먼트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자사주를 소각한다. 

 

◆정부소비 GDP 기여 9년만 최저

 

정부가 지난해 세수 부족 등으로 재정을 소극적으로 운용한 결과 경제 성장에 기여도가 역대급으로 낮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GDP가 연간 1.4%(속보치 기준) 성장한 가운데 이에 대한 정부의 기여도는 0.4%포인트(원계열 기준)에 그쳐 2014년(0.4%포인트)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정부의 소비가 작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0.4%포인트 끌어올리는 데 그쳤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민간소비는 0.9%포인트 기여를 기록했다.  

 

정부소비는 정부가 공공 서비스 등을 위해 집행하는 모든 비용 지출과 투자를 가리키며, 예산 집행도 이에 포함된다. 공무원 임금 지급,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비용 등도 모두 정부의 소비 활동으로 포함된다.

 

정부소비는 우리 GDP 성장의 큰 축 중 하나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3 대한민국 경제’에 따르면 2022년 대한민국 GDP 2162조원 중 정부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인 406조원이었다. 

 

정부소비는 2019년 1.6%포인트를 기록한 뒤 5년 연속으로 하락세다. 특히 윤석열정부가 긴축 재정 기조를 강화한 지난해 1분기 1%포인트(이하 직전 분기 대비 기준)를 기록한 뒤 2분기 0.3%포인트, 3분기 0.2%포인트로 점차 낮아지다 4분기에는 0%포인트를 기록했다. 기획재정부는 “기저효과에 주로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정부의 성장 기여도가 0%포인트로 전락한 것은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0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정부가 지출을 줄이면 승수효과를 일으켜 국가 전체의 부를 더 감소시키는 결과를 맞는다. 승수효과는 경제활동 과정에서 투자가 이뤄지면 더 많은 수요가 창출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2019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정부 지출 승수효과가 1.27(5년 누적 기준)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예산 지출 10조원을 줄였다면, GDP는 12조7000억원 줄어든다는 얘기다.

 

다만 GDP 대비 50% 수준인 국가채무를 감안하면 재정 건전성 확보와 정부소비를 통한 경제 성장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만족하도록 예산을 융통성 있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윤곽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준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이달 중 윤곽을 드러낸다.  금융 당국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중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 비상경제장관회의를 통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확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프로그램은 상장사 스스로 주가순자산비율(PBR)·자기자본이익률(ROE) 등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이유를 분석해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투자자들에게 적극 설명·소통하도록 지원하는 방안으로, 세부 정책이 준비 중이다.

 

금융 당국이 밸류업 프로그램의 참고 국가로 삼고 있는 일본의 도쿄증권거래소는 지난해 3월 주당순자산가치(BPS) 1 이하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자본수익성과 성장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 방침과 구체적인 이행 목표를 공개하도록 요구한 바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기준 구체적인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공표한 상장사는 프라임 시장 1656개사 중 39.9%인 660개사였다. 앞으로 기업가치 제고 노력 공표를 검토하겠다는 상장사들을 포함하면 49.2%까지 확대된다.

 

금융 당국은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을 비롯해 당분간 자본시장 주주 환원에 방점을 찍고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설 연휴를 앞두고 금융 당국 간부들에 선물한 책 ‘인구대역전-인플레이션이 온다’에서도 이 같은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글로벌 노동인구 감소와 부양비율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상승, 저성장, 고금리가 전망되면서 대응 방안으로 금융 시스템을 부채금융 중심에서 자본금융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을 제언하고 있다.


이병훈 기자 bh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