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오늘의시선] 실리·신뢰 다 잃을 의사파업 강행할 건가

의대 증원은 필수의료 확보의 필요조건
진료거부로 ‘양면게임’ 피해자 되지 않기를

‘양면게임(double game) 이론’은 로버트 퍼트넘 하버드대학 교수의 외교협상 이론이다. 외교 분야뿐 아니라 국내의 많은 ‘교섭 상황’을 게임이론으로 기막히게 풀어낸다. 협상 대표는 상대방과의 게임과 동시에, 자기가 대표하는 소속 집단 내의 게임도 직면한다. 협상 대표는 후자를 더 중시할 수도 있다. 협상 결과로 많이 얻어 와서 회원에게 실제로 이익을 주는 것보다, 많이 얻어 왔다고 회원에게 인정받는 것이 협상 대표의 주된 관심일지 모른다. 양면게임 이론은, 서로가 서로의 내부 상황을 추정하고 있을 때, 즉 상대 집단의 구성원이 협상 대표에게 부여한 카드(윈셋·win-set)를 어느 정도 알 때 특히 분석력을 갖는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협회의 줄다리기에서 ‘양면게임’의 양상을 본다. 의사 회원들은 의대 증원이 개개인의 수입 감소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의대 증원이 사회에 이런저런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하지만, 주장의 근저에는 희소가치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기득권이 있다. 그러니 의대 증원 허용이 협상의 윈셋으로 주어질 리 없다. 새로운 의사협회장은 오는 3월에 직선 투표로 정해진다. 협회 집행부에게는 회원 의사들의 실질적 이익보다는, 본인들의 노력에 대한 회원의 인정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회원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1000명 증원’이라도 받아내는 협상을 벌여야 했으나, 그리되면 회원의 인정은 받기 어려워진다. 그러니 ‘2000명 증원’의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대표직을 사퇴하는 것이 주어진 윈셋이 작은 협상 대표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

정형선 연세대 교수 보건행정학

의사의 과소 공급이 20년 누적됨에 따라 의사 부족의 심각도가 커졌다. 지난 정부에서도 의대 증원의 시도가 있었지만, 코로나19 상황이었다. 진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들 앞에서 두 손을 들었다. 코로나 끝나면 다시 의대 증원을 추진하기로 다짐했을 것이다. 언론에서 ‘응급환자 거부’, ‘소아과 오픈런’이 계속 보도되자, 국민의 85%가 의사 증원에 찬성하고 있다. 의과대학은 2000∼3000명을 추가 교육, 배출하는 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해 줬다. 의사협회가 정부의 기세를 보면서 뒤늦게 사정했던 ‘300명 증원’은 국민이 정부에게 기대하는 윈셋을 벗어나 있었다. 양면게임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두 협상 대표가 갖는 윈셋에는 겹치는 부분이 없어진 것이다.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2025년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연 5058명, 즉 ‘2000명 증원’으로 결정했다. 길게는 15년, 짧게는 3년, 집중적으로는 지난 몇 달간 정부와 의사단체 사이에 많은 협의와 공방이 있었다. 의사협회는 합의한 바 없다고 항의한다. 엄밀히 보면, 의대 증원 정책이 협상을 통해 합의를 볼 내용은 아니다. 학부생의 정원을 정하는데 출신 직업군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을 넘어, 합의나 허락을 받을 수는 없다. 2000년대 초에 의대 정원을 축소하기로 밀실에서 ‘합의’함으로써 오늘의 문제가 초래되지 않았나.

 

의사협회가 실리적 협의를 통해 의대 증원 규모를 최소화했다면 의사 회원들의 기득권 유지에는 좋았겠다. 하지만 20년 전의 정원 축소로 누리는 희소가치에 취해 있는 회원 앞에 네 자릿수 증원이라는 결과물을 들고 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2000명 증원’으로 의사 기득권에는 피해가 갔다. 새로운 비대위는 파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답답할 정도로 길었던 인내의 과정, 합법 절차를 통해 결정된 정책을 철회하는 선택은 정책 당국에게 국민이 부여한 윈셋에 없다. 의사 집행부도 이를 알고 있다. 양면게임의 답은 나와 있다. 의대 정원 확충은 필수의료 확보의 필요조건이다. 필수의료 패키지에 담긴 충분조건의 이행을 통해 실리를 얻을 것인가. 아니면 명분 없는 진료 거부로 국민의 신뢰만 잃고 불이익을 받을 것인가. 비대위가 직면한 양면게임에서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머리 좋은 의사들이 판단함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 보건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