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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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우주항공청 구심점 삼아 기술 경쟁력 확보… 세계와 경쟁” [세계초대석]

정부 주도 선진국 추격하며 우주개발
세계 7위 올랐지만 6위와 격차 너무 커
앞으론 산업체 키워 독창적 기술 중요

우주항공청, 우주정책·연구개발 총괄
항우연·천문연은 전략기술 확보 역할
사업 주관 산업체에 맡겨 산업 키워야

2032년 달 착륙 도전 위해 개발 총력
우주경제시대 뒤처지면 안보력 등 상실
지금까지 못했던 기술 영역 선점 필요

전 세계가 우주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인도, 일본 등 많은 나라가 달로 향하고 있다. 미국 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로켓랩 등 민간기업들이 발사체를 고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우리 기술로 만든 실용위성을 우리가 만든 발사체 누리호에 실어 우주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한국의 첫 달 탐사선 다누리호는 달 궤도에 올라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세계 7위 우주 강국이다. 하지만 안주할 수 없다. 무엇을 더해야 할까.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국 우주산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먼 미래를 내다보고 기술·산업적 가치가 크고, 선진국에서 성과를 내지 못해 지금 시작하면 충분히 앞서갈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우주개발 1세대이자, 누리호와 다누리호 성공을 이끈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성과가 많았으나 한국의 우주산업은 구조가 취약하다고 냉정한 진단을 내렸다. 그동안 선진국을 추격하며 정부 주도로 해 왔다면, 이제는 산업체를 강하게 키워 독창적인 기술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5월 출범을 앞둔 우주항공청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원장은 “우주항공청이 아이디어를 내고, 항우연은 산업체가 어려워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기존 항우연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최대한 많이 산업체에 넘겨줘야 한다”며 “이런 것들이 합쳐지면 우주항공청 시대와 더불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에게 한국 우주개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이 원장과의 일문일답.

 

―우주항공청이 신설된다. 우리나라 우주항공 분야에 어떤 의미를 가지나.

 

“한국은 지난 30년 우주개발을 해 왔다. 지금까지 과학기술 중심으로 열심히 추격했다. 그러나 우주개발을 총괄하는 부서가 없었다. 우주항공청이 생기면 달라질 것이다. 이전이 1단계였다면, 이후는 2단계 또는 2세대라고 할 수 있다. 우주항공청을 구심점으로 삼아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본격적으로 세계와 경쟁하는 구도가 될 것 같다.”

―우주항공청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우주항공청은 우주산업을 지속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 우주개발 생태계를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뉴스페이스 시대를 이끄는 민간기업들의 뒤에는 우주항공청과 같은 각국의 정부 컨트롤타워가 있었다. 그동안 과학기술 중심으로 따라왔는데, 부품은 해외에서 도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국방·외교·안보·산업 등 우주가 인프라가 될 것인 만큼,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항우연은 우주항공청 소관기관이 된다. 어떻게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보나.

 

“이전과 같진 않을 것이다. 우주항공청이 우주 정책과 연구개발(R&D)을 총괄하고, 항우연과 천문연은 미자립·미확보 기술이나 국가전략기술을 확보하는 역할을 할 것 같다. 항우연이 먼저 도전적·선도형 연구개발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체와의 관계도 달라질 것이다. 일반적인 우주항공사업의 주관은 최대한 산업체가 하게 하고 지원해 산업이 제대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 우주 기술 수준에 대한 평가는.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

 

“한국 우주 순위가 세계 7위라고 한다. 후발 주자로 1980년대 말 늦게 시작해 상위 그룹까지 오른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고무적이다. 상위 그룹에 걸친 것은 다행이지만 6위와 격차가 너무 크다. 차이를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우주산업은 약해 해외와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사실 순위가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산업체를 강하게 해서 세계적으로 독창적이고 경쟁력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페이스X가 나올 수 있을까.

 

“스페이스X의 성공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는 기술 혁신이다. 흔히 말하는 혁신이 아니라 파괴적 혁신, 전문 기관이 수십년 하지 않았던 혁신을 해냈다. 또 다른 하나는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 등 정부의 든든한 지원이다. 기술 혁신 부문에서는 우리도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기업들이 혁신에 도전할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민간도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 혁신에 노력하고,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체계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도전적인 목표 수립을 해야 한다. 그러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2032년 달 착륙 도전에 나섰다.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

 

“달 착륙선 사업은 2024년부터 2033년까지 개발 기간 10년, 총 사업비 5303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다. 달 착륙은 현재 누리호로는 제한적이어서 지난해 차세대 발사체 개발에 착수했다. 달 착륙선 개발사업도 별도로 진행 중이다. 합쳐져 2030년 달 궤도에 투입해 성능을 검증하고, 2031년 연착륙 성능 검증을 거쳐 2032년 최종 착륙선을 보낼 계획이다. 달에는 공기가 없기에 낙하산이 소용없고 동력하강단계를 거쳐 연착륙을 해야 한다. 어려운 기술이어서 앞서 달로 착륙선을 보낸 나라들도 실패 경험이 있다. 이것을 이제 우리가 해야 한다.”

―우주 기술 개발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면서 예산 낭비라는 비난이 일기도 한다. 왜 우주로, 달로 가야 하나.

 

“우주개발 국가가 전 세계 약 90개국이다. 대한민국이 안 하는 게 맞나. 우주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 영역이다. 어떻게 잘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과거 우주는 국위 선양의 상징성이었다면, 지금은 국가적으로 필요한 외교·안보·산업·경제 등 모든 것이 우주를 향하고 있다. 우주경제시대에 뒤처지는 국가는 자원 고갈과 경제력·안보력 상실, 삶의 터전 확장 기회 상실을 겪을 것이다.”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자주 언급했다. 무엇을 해야 하나.

 

“우주 분야 1호 엔지니어로 일하다 되돌아보니 뿌듯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생각도 든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그동안 한 건 선진국을 열심히 쫓아간 것이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지금까지 방식으로는 앞지르기 어렵다. 스포츠는 선수가 은퇴하면 역전의 기회가 있는데, 우주 분야는 선진국도 끝없이 달리고 있기에 추월하기 힘들다. 산업적으로도 반도체나 자동차는 뒤늦게 시작해도 경쟁국보다 싸게 좋게 만들면 경쟁이 되지만, 우주산업은 안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안 하는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기술 영역을 선제적으로 차지해야 한다. 우주에서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지상으로 가져오는 방법이나 궤도상에 있는 위성을 자동차 정비하듯 연료를 보충하고 수리해 지속해서 쓸 수 있게 하는 서비스, 우주 쓰레기 수거, 화성이나 심우주로 수개월간 이동할 때 필요한 원자력 추진 엔진 등 모두 미래적인 것들이다. 선진국에서도 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실용화하지 못한 기술이 많다. 이런 것을 고민하고 투자해야 한다.”

―최근 항우연도 공공기관에서 해제됐다. 무엇이 달라지나.

 

“자율성이 이전보다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공공기관이면 인건비가 제한되고, 인력도 통제받는다. 미래를 준비하려면 기관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자율성이 있어야 한다. 공공기관 해제는 어느 정도 융통성을 주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 R&D 예산 삭감되면서 논란이 많았다. 어려움은 없었나.

 

“아쉬움이 있었다. R&D 예산을 줄이되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했다면 불만이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연구과제 1, 2, 3이 있다면 기관별로 판단해서 1∼3 다 줄이거나, 2, 3과제만 우선 줄이거나 선택할 수 있었다면 좋겠으나 이런 것을 못하게 돼 있다. 현 R&D 체제는 30년 동안 바뀐 게 없다. 과제별 예산을 제출하니 과제 책임자끼리 싸운다. 우선순위보다는 전년도 예산과 비교해 결정되는 경우도 많다. 방만하게 쓰지 않도록 기관에 목표와 자율성을 주고, 안 되면 기관에 책임을 물으면 된다. 같은 예산을 쓰더라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3월 항우연 원장 임기가 끝이 난다. 이후 계획은.

 

“임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항우연이 우주항공청 소관기관으로 잘 자리 잡을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 이후는 은퇴에 가까운 나이라 무계획이 계획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경험 지식으로 국가적으로나 우주항공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할 것이다.”

 

―후배 우주항공 연구자들과 우주과학자를 희망하는 어린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금은 스페이스X를 넘어서겠다, 인류의 무엇이 되겠다, 꿈꿀 수 있는 시대다. 크고 원대한 꿈을 꿨으면 한다. 특히 우주 분야는 평생을 해도 끝없는 분야다. 꾸준하게 열정을 가지고 했으면 한다.”

 

이상률 항공우주연구원장은…

 

●1960년 경북 포항 출생 ●서울대 항공공학 학사·석사 ●프랑스 폴사바티에대 박사 ●항우연 다목적위성체계그룹 그룹장 ●〃아리랑위성3호사업단장 ●〃다목적실용위성5호사업단장 ●〃위성연구본부장 ●〃항공우주시스템연구소장 ●〃정지궤도복합위성사업단장 ●〃부원장 ●〃달탐사사업단장 ●〃원장(2021∼)


대담=김기환 산업부장, 정리=이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