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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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네덜란드 前총리 부부 안락사

불치병 환자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단하는 행위는 안락사·존엄사·조력사 등으로 구분된다. 의료진이 직접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 적극적 안락사, 환자나 가족의 요청으로 영양 공급이나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게 소극적 안락사다.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에 가깝다. 조력사는 의사의 도움을 받되 스스로 치사량의 약을 먹거나 주사하는 일종의 자살행위다.

2002년 세계 최초로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가 네덜란드다. 뇌, 심장 계통의 불치병 환자 중에 신체적·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 지속되는 환자에 대해 안락사를 허용한다. 의사 2명 이상이 동의해야 가능하다. 2022년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를 택한 사람은 8720명이나 된다. 존엄한 죽음 인정은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다. 벨기에, 스페인,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 호주 등 10여개 국가가 안락사를 허용한다. 국민 80%가 가톨릭 신자인 포르투갈은 의회가 통과시킨 안락사 합법화 법안을 대통령이 두 번이나 거부했지만 결국 지난해 5월 세 번째 시도로 통과됐다.

드리스 판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 부부가 최근 자택에서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판아흐트 전 총리는 2019년 행사장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회복하지 못했고, 부인 역시 지병을 앓고 있었다. 그가 생전 설립한 ‘권리포럼 연구소’는 “부부가 둘 다 많이 아팠고, 서로 혼자서는 떠날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대학 때 만나 70년을 해로한 아흔세 살 동갑내기 부부가 손을 잡고 임종했다니 안타깝고 눈물겨운 순애보다. 네덜란드에서 부부 동반 안락사는 2020년 26명, 2021년 32명, 2022년 58명으로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2년 국회에서 존엄조력사법이 발의됐다. 국민 80% 이상이 안락사 도입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하지만 안락사는 종교적, 윤리적 문제로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생명 존엄성 경시 풍조 확산과 안락사의 악용·남용에 대한 우려가 작지 않다. 그럼에도 존엄한 죽음 역시 인간의 권리라는 관점에서 신중하고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듯하다.


채희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