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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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백악관 전 비서실장 폭로… “트럼프, 한·일에 미군 주둔 반대했다”

재집권 땐 국제 정세 요동 우려

“한·일에 미군 주둔 반대” 폭로
‘러 침공’ 발언 이틀 만에 또 파문
“양측 방위비 평등해야” 날 세워
前참모 볼턴 “나토 심각한 위기”

나토 회원국 “안보 강화” 목소리
獨·佛·폴란드 정상 즉각 연쇄회동
“유럽 안보로 도박 땐 러만 이익”

전 세계가 11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유력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 외교·안보정책을 염두에 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직·간접적인 발언들이 쏟아지면서 집권 2기가 현실화할 경우 국제 정세가 또 한번 요동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 속 미 CNN방송은 12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주한·주일미군에 완강히 반대했다는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의 발언을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 전반기 핵심 참모로 일했던 켈리 전 실장의 이 같은 발언은 다음달 12일 출간 예정인 CNN 앵커 짐 슈터의 책 ‘강대국의 귀환’에 담겨 있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이 재임시절인 2017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존 켈리 신임 백악관 비서실장(왼쪽)을 공식 임명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워싱턴=EPA연합뉴스

켈리 전 실장은 슈터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억지력을 위해 한국과 일본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시 한·일동맹에 악영향이 불가피함을 시사한 것이다.

한국엔 주한미군 완전 철수를 언급했던 트럼프 집권 1기 때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위협하며 방위비 분담금 5배 증액을 요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들(한국)은 우리에게 삼성 TV를 파는데, 우리는 그들을 보호해 준다. 이는 맞지 않는다”며 한국인에 대해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안보 정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또다시 나토 방위비 분담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우리는 나토보다 1000억달러 이상 더 많은 금액으로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다”면서 “(미국과) 나토는 평등을 유지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어 “그렇지 않다면 미국이 먼저다”라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10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대선후보 경선 유세에서 방위비를 부담하지 않는 나토 회원국을 공격하도록 러시아를 격려하겠다고 폭탄 발언을 해 국내외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찰스 브라운 미 합참의장도 “미국의 신뢰가 위태롭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 비판에 합세했다. 브라운 합참의장은 12일 미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토 무시’ 발언과 관련한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이같이 밝히며 “내가 하는 일은 나토와 우리의 관계를 구축하고 강화하는 데 계속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토 탈퇴를 추진할 수 있다는 옛 참모들의 경고도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은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그는 나토 탈퇴를 다시 추진할 것이고, 나토는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와 대만에 대한 지원도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켈리 전 실장도 슈터와 인터뷰에서 “핵심은 트럼프가 나토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리가 이 사람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마치 들들 볶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며 “우리가 나토를 갖지 않았다면, 푸틴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별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미 공화당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예비 선거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그는 이날 네바다주 공화당 코커스에서도 승리했다.  팜비치(미 플로리다주)=AP/뉴시스

이렇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일 방위비 분담을 언급하며 압박해 오고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한 고위 당국자들의 경고까지 쏟아져 나오자 나토 회원국들은 일제히 유럽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잇달아 만나 유럽연합(EU)이 자체적으로 군사 강국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투스크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를 언급하며 3국의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삼총사에 나오는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란 구호가 가장 명확하게 울려 퍼지는 곳은 아마 바로 이곳 프랑스 파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승리는 곧 유럽 안보의 종말이라고 경고해 온 마크롱 대통령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한 무기 생산을 늘려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우회 비판했다.

 

숄츠 총리는 투스크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누구도 유럽의 안보를 놓고 도박을 할 수 없다”며 날을 세웠다. 이어 “나토의 상호 지원 보장을 상대화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하며 전적으로 러시아에만 이익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 자리에서 투스크 총리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말은 우리 모두에게, 특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실제 위협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찬물 샤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우리는 미국의 전폭적인 협력을 기대하지만 유럽도 자체적으로 안보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집권 1기 때 유럽도 한국처럼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받은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2020년 독일 등 유럽 동맹국들이 2014년 약속대로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에 써야 한다며 강하게 압박해 왔다. 유럽 정상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토 발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예림 기자 yea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