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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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병역·방송법… 거대 양당 빈틈 파고들며 공약 차별화 [심층기획-제3지대 공약 분석]

경찰·소방관 희망 여성 병역 의무화
병역 확보·군 가산점 논쟁 차단 취지

‘지하철 공짜 폐지’로 지자체 부채 해결
노인회는 “노인 학대” 반발… 논란 예고

서울아파트값 이하 재산 상속세 면제
소득세 점진적 인상 등 들고 나오기도

거대양당 “관심끌기용 공약” 평가절하
일각 “지속 어려운 제도 타개 해법 담겨”
“‘병역에서 가사까지 성평등’을 의제로 구체적 정책을 토론하고 사회적 합의를 형성합시다.”(새로운선택 정책 3호. ‘청년의 행복과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젠더 갈등 해결 방안’)

“소련의 고연령층 무임승차 제도를 본떠 만든 이 제도는 이제 수명을 다했습니다.”(개혁신당, 65세 이상 지하철 무상이용 혜택 폐지 공약 발표)

 

이낙연(왼쪽)·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 뉴시스

제3지대 공약을 두고 거대 양당에서는 “관심끌기용 공약”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거대 양당이 정쟁을 벌이는 동안 진짜 민생 의제가 사라졌다고 반박한다. 개혁신당에 합류한 새로운선택 조성주 대표는 14일 세계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검사 독재 청산이, 운동권 청산이 평범한 시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라고 꼬집었다.

 

3지대 공약들은 일견 발칙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지속이 어려운 제도와 이를 타개하기 위한 나름의 해법이 담겼다. 예컨대, 여성 병역의 경우 전통적 성역할을 바꾸는 ‘성평등’ 차원의 주제면서도 인구 감소에 따른 병력 부족 문제가 담겨 있다. 고령층 지하철 무상이용 폐지는 인구 고령화와 낙후된 사회 기반 시설 문제를 품고 있다. ‘상속세 현실화’ 공약도 임금근로자 대부분의 고용을 책임지는 중소기업의 고민과 ‘집 한 채’ 가진 중산층의 고민을 덜어주자는 차원의 접근이다. 고성장 시대에 설계된 재분배 정책을 현실에 맞게 고쳐보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새로운미래와 새로운선택, 원칙과상식, 한국의희망 등 3지대 정당이 모인 개혁신당은 오는 25일 통합 창당대회를 전후로 공통 공약을 추리는 한편, 새로운 공약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그간 제 정당들이 내놓은 공약을 우선 검토하면서 ‘최대공약수’를 추려나가는 과정이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공영방송 사장 임명동의제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한 방송법은 공영방송에 정치권 입김을 줄이자는 내용이 골자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야당일 때는 적극 처리에 나서겠다고 하지만 막상 정권을 잡으면 논의를 꺼리는 법이다. 문재인정부 시절 민주당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한을 여야 정당에 7대 6으로 부여, 야당 동의 없이 사장 선임을 불가능하게 한 법안을 발의했지만 끝내 처리하지 않았다. 180석을 얻은 21대 국회에서도 처리를 미루다 2022년 대선에서 진 뒤에야 처리를 주장했다. 국민의힘도 야당 시절에는 방송법 처리를 요구했지만 정권을 잡은 뒤에는 논의를 이어가지 않았다.

개혁신당은 접근 방법을 바꿔 공영방송 사장 임명동의제를 내놨다. 여야 정당이 추천한 이사들로 구성된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문화진흥회가 사장을 추천하면 방송국 근로자들의 동의 여부로 사장을 임명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 사장 후보자에게 10년 이상 방송 경력을 강제하도록 했다. 이준석 대표는 “권력이 낙하산을 찍어누를 때 집단적 총의를 모아서 강하게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외부 진행자 선임보다는 내부인력으로 대체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웠다. 정권에 따라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가 바뀌는 풍토를 원천 차단, 편향성 시비 논란을 일소하자는 의미다.

◆‘상속세 현실화’

상속세 조정 요구는 그동안 재계에서 제기돼 왔다. ‘절대다수 서민의 표’가 필요한 양당으로선 수용이 쉽지 않은 요구다. 현 정부에서도 윤석열 대통령과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가 각각 ‘논의를 해 봄 직하다’ 수준으로 말했을 뿐이지, 구체적인 논의로 발전하진 않았다. 국민의힘은 상속세 개편을 검토한다는 언론 보도에 선을 그었고,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선거를 앞둔 졸속 공약”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반면 3지대 정당은 징벌적 세금 형태가 아닌 ‘계층 간 타협에 기초한 선진국형 증세’라며 상속세 개편 공약을 내놓았다. 새로운선택은 ‘서울 아파트 가격 이하 재산 상속·증여세 면제’ 공약을 밝혔다. 대신 각종 공제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 소득세를 점진적으로 높이자고 했다. 소액 주주 권리 확대와 기업 지배 투명화 개혁을 전제로 기업 지분 상속 증여 최고 세율도 50%에서 25%로 낮추겠다고 했다. 이와 함께 근로장려세제 등 ‘마이너스 소득세’를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새로운선택 주장대로 세제가 개편되면 기존 소득세 면세자 일부는 세금을 내게 되고, 중산층 이상 계층의 경우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이렇게 확보한 재정으로 복지제도를 확충하는 데 쓰자는 제안이다.

개혁신당의 경우 과점주주 상속세율을 60%에서 50%로 인하하는 방안을 내놨다. 과점주주가 상속 절차를 마무리하기 전까지, 상속세 절감을 위해 주가 상승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한 조정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다만 이 이상의 상속세 조정 등은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여성 신규 공무원 병역 의무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여성 병역

여성 병역 논쟁은 주로 진보 정당이나 여성계에서 이뤄졌다. 고통 분담의 문제가 아닌 전통적 성역할을 바꾸자는 차원에서다.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에서는 논의가 이뤄진 적이 없다. 민주당에서는 일부 여성 의원이 개별적으로 주장한 바 있지만, 공약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반면 이번 총선을 앞두고 3지대에서는 여성 병역과 관련된 공약이 나왔다.

개혁신당은 여성 경찰과 해양경찰, 소방, 교정 직렬 신규 공무원 희망자에게 병역 의무화 공약을 내놨다. 신속한 입법과 생활관 개선을 통해 이르면 2030년부터 여성의 병사 근무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개혁신당의 경우 성역할보다는 병역자원 확보와 군 경력 가산에 따른 불평등 논쟁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새로운선택은 ‘제2차 성평등’에 초점을 맞췄다. ‘나라를 지키는 남성을 위해 여성이 집안을 돌본다’는 전통적 성역할 구조를 타파하자는 취지다. 이 과정에서 여성 징병제 역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제안 설명에서 “ ‘병역에서 가사까지’ 성평등을 의제로 총선에서 토론하자”고 밝혔다.

개혁신당 금태섭 최고위원이 새로운선택 창당준비위원장 시절인 지난해 12월 11일 국회에서 병역 평등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는 젠더정책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령자 지하철 무상이용 폐지

지하철 무상이용 혜택 폐지는 개혁신당 공약 중 가장 찬반양론이 첨예하다. 당장 대한노인회는 ‘노인학대’라고 반박했다. 개혁신당은 미래세대의 세금으로 해결해야 할 도시철도 운영기관 부채를 해결하고, 지하철 비용을 대는 지방자치단체 부담을 덜어주자는 접근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도시철도는 무임 비용에 대한 국가 지원이 없고, 철도 공기관 부채는 나날이 쌓이고 있으며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추가 부담 우려도 적잖다.

한편 개혁신당은 국가가 기업에 준법 의무, 납세의무 외에 준조세 성격의 요구나 비자발적 기여를 요구하지 못하게 하는 ‘떡볶이 방지 특별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총수들이 윤 대통령과 부산에서 떡볶이 등 분식을 함께 먹은 것을 직접 겨냥한 공약이다.


김현우 기자 wit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