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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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적 참호에 폭탄 투하… SNS에 영상 올려 선전戰 [심층기획-우크라이나 전쟁 2년]

〈하〉 현대전 상식 뒤엎은 전장

24일 우크라 전쟁 2년… 개념 재정립
참호전·미사일·드론 공격… 과거·현대·미래전 뒤섞인 새 복합 전장의 시대 돌입

무인기 감시에 기갑부대 기습 불가능
보병부대 동원한 ‘각개격파 전술’ 양상
1·2차대전 유사한 재래식 포격전 재연

전자전 분야 기술 8주마다 업그레이드
기업 등 민간 참여 기존 전쟁보다 활발
해킹·가짜뉴스 등 사이버 전선도 치열

우크라이나군 진지에서 드론 한 대가 소리 없이 이륙했다. 폭탄을 싣고 수㎞를 날아간 드론의 카메라에 러시아군 참호가 포착됐다. 러시아군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확인한 드론 조종병은 폭탄 투하 스위치를 눌렀다. 러시아 병사들은 쓰러지거나 참호 밖으로 도주했다. 폭탄을 떨어뜨린 드론은 이 모든 과정을 촬영했고, 며칠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영상이 게시됐다.

이 같은 모습은 발발 2주년(24일)을 앞둔 우크라이나 전쟁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1·2차 세계대전에서 볼 수 있었던 보병전과 참호전, 미사일과 대포가 상징하는 현대전, 드론과 인터넷 등 첨단기술로 무장한 미래전 양상이 동시에 드러났다. 과거와 현대, 미래 전쟁의 특성이 복합적으로 얽힌 ‘새로운 전쟁’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군은 튀르키예산 바이락타르 TB2 드론으로 러시아군 전차와 장갑차를 공격해 러시아군의 수도 키이우 공략 시도를 저지했다. 이후 중국 DJI 팬텀 드론을 비롯한 민간 상업용 드론과 FPV(First Person View·1인칭 시점) 드론을 투입해 러시아군을 공격했다. 무인수상정을 개발해 흑해에서 러시아 함정을 여러 차례 격침했다. 러시아군도 민간 드론과 더불어 이란산 샤헤드-136 자폭드론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시설 등을 타격하며 반격에 나섰다.

드론 활용이 늘어나는 것과 맞물려 우크라이나 전쟁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전쟁술이 동시에 등장하며 서로 융합하고 영향을 미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양측은 드론 감시 및 공격을 피하고자 전파방해 장비 등을 활용한 전자전을 치열하게 벌였다. 전자전 공격으로 인해 임무 수행 도중 추락하는 드론이 적지 않았다. 전자전과 더불어 전선에서는 참호와 대공포가 등장했다. 1·2차 세계대전 당시에 쓰였던 것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셈인데, 당시는 포격과 전투기 공습을 막으려는 의도였다면 지금은 드론 대응을 위한 대책 차원이 크다.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던지는 폭탄에 큰 피해를 입은 러시아군은 참호들을 연결하는 터널을 만들어 드론 공격을 피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2개 이상의 기관총을 묶은 대공포를 트럭에 탑재해 기동성을 높이고, 쌍안경 등의 감시장비를 추가해서 ‘드론 킬러’ 방공부대를 구성해 러시아 드론 요격작전에 나섰다.

하늘 위에 드론이 떠 있는 상황에서 기갑부대의 기습적 투입을 통한 ‘충격과 돌파’는 불가능했다. 기습은 적군이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할 때 효과가 있다. 드론으로 전장 상황이 모두 드러나는 상황에서 전차와 장갑차로 방어선을 공격하면 곧바로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포격을 감행해 적군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장애물을 파괴한 뒤 보병부대를 동원해 상대방 진지나 마을을 하나씩 공격하는 피비린내 나는 전술을 쓸 수밖에 없었다. 21세기 첨단기술(드론, 인터넷, 전자전)과 1·2차 세계대전 전술(참호전, 보병전 등)이 함께 등장하는 양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이 같은 국면은 양측이 퍼부은 화력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양측은 높은 정밀도와 파괴력을 지닌 첨단 정밀유도무기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러시아군은 음속의 5배가 넘는 속도로 날아가는 킨잘 극초음속미사일을 비롯해 kh-101 공중발사 순항미사일,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 등의 정밀유도무기를 우크라이나로 쐈다. 북한에서 들여온 KN-24·25 단거리탄도미사일도 포함됐다. 우크라이나는 영국과 프랑스가 지원한 스톰 섀도·스칼프 공대지미사일, 미국이 보내준 하이마스(HIMARS·고기동성 포병 로켓 시스템) 등으로 전선 후방의 러시아군 거점을 타격했다. 우크라이나가 자체 개발하거나 개조한 자폭 무인기도 러시아 후방 지역을 강타했다.

 

1·2차 세계대전, 6·25전쟁과 유사한 재래식 포격전이 재연된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일일 최대 포탄 소비량은 각각 2000발과 1만발. 한 달에 양측이 포탄 36만발을 쓰는 셈이다. 이처럼 많은 양의 포탄을 소비하는 것은 포탄의 정밀도와 파괴력과 무관치 않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155㎜ 포탄으로 적 참호를 부수려면 참호 반경 2m 이내에 포탄이 낙하해야 한다. 정밀유도포탄이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재고도 적어서 지휘소나 물자보급소 등의 핵심시설 타격에 주로 쓰인다. 일반 포탄은 정확도가 낮아서 참호를 단번에 파괴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아군 보병이 적 참호에 접근해 공격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포를 쏴서 참호에 있는 적군의 대응사격을 저지하는 방법을 쓴다. 지키는 입장에선 포격으로 적군의 접근을 막아야 한다. 냉전 이후 벌어진 다른 전쟁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포탄 소모량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술 발전 가속화… 전쟁 범위 확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전투에서 활용되는 기술의 발전 속도도 한층 가속화하고 있다. 교착 국면의 전쟁에서 돌파구를 얻고자 양측은 기술 혁신을 적극 추구했다. 특정 기술이 전쟁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기간을 단축시키는 모양새다.

 

이는 전자전 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미 군사전문매체 브레이킹 디펜스에 따르면, 양측의 드론 운용 전술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드론 공격을 저지하는 전자전 분야는 8주마다 기술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똑같은 방식으로 작전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는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은 군사과학기술과 전술혁신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전쟁 범위도 한층 넓어지고 있다. 특정 지역 위주로 벌어지는 전쟁과 더불어 사이버 공간 등에서도 전쟁이 한창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정보총국(HUR)은 지난달 사이버 공격으로 특수통신에 쓰던 러시아 국방부 서버를 다운시켰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해커들도 전쟁 발발 직후 우크라이나의 정부·민간기관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지속하고 있다. SNS를 통한 양측 간 선전전과 허위정보 유포 등도 치열하다. 내전이 한창인 아프리카 수단에서 우크라이나 특수전부대가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그룹 용병과 맞서 싸우는 정황도 외신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민간 분야의 참여 폭도 확대되고 있다. 객관적인 군사력 측면에서 열세인 우크라이나로선 국내외 민간기업 역량을 결집해야 하는 처지다. 기업 입장에선 쉽게 얻기 힘든 데이터를 모으면서 우크라이나를 돕는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다. 민간 분야의 참여가 기존 전쟁보다 더 활발한 이유다.

 

플래닛 랩스를 비롯한 민간 위성영상서비스 업체들은 전쟁 전부터 러시아군의 동향을 담은 위성사진들을 공개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의 군사적 의도를 전 세계에 알렸다. 전쟁 발발 이후부터는 우크라이나 측에 위성사진을 제공하며 우크라이나군 수뇌부의 작전 지휘를 지원했다.

 

일론 머스크의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가 운영하는 위성단말기 스타링크도 큰 역할을 했다. 머스크는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를 지원했다. 우크라이나군은 군대의 지휘통제와 드론 운용 등에 스타링크를 활용해 러시아군을 저지하는 작전을 진행할 수 있었다. 미국 기업 팔란티어의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고담은 다양한 경로에서 받은 정보를 분석해 러시아군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 우크라이나군 작전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