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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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창백한 푸른 점과 기후정치

급격한 기후 온난화 비상사태
1.5도 상승서 멈추기 쉽지 않아
시민뿐만 아닌 정치 변화 시급
해결 촉진할 사람 국회 보내야

1990년 2월13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보이저 1호가 해왕성을 지나 지구에서 약 60억㎞ 떨어진 곳에서 태양계 바깥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을 때, 임무 관리자가 3시간 동안 카메라를 예열하기 시작했다. 예열이 끝난 보이저 1호는 해왕성에서 금성과 태양에 이르는 태양계 가족의 이미지를 촬영했다. 그리고 2월14일 4시48분(GMT) 지구의 초상화를 찍었다. 칼 세이건이 말한 ‘창백한 푸른 점’이 바로 그것이다.

정확히 34년이 지난 2024년 2월14일 일군의 시민이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 모여 성명문을 낭독했다. “기후가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다. 1994년 우리는, 2024년에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살게 될지 예상할 수 있었다. 2024년 우리는, 2054년에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살게 될지 알지 못한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정말이다. 30년 후 지구 기후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불과 2년 전 과학자들은 “산업화 이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이 1.5도에 달하는 때는 2030∼2035년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2021년까지 1.1도 상승한 것에 비하면 과한 예측으로 보였다. 그런데 웬걸! 2023년에 이미 1.48도에 달했다. 2023년 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최근 12개월 동안에는 1.52도에 달했다.

작년 4월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4월이면 북반구는 여름을 향해 가지만 남반구는 겨울을 향한다. 북반구보다 남반구 바다가 훨씬 넓다. 따라서 4월부터는 지구 해수면 평균온도가 내려가야 정상인데 작년에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해수면 온도 그래프가 전년도 그래프에 바짝 붙어서 오르지 않고 점프한 모습을 보였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작년은 예외적인 현상이어야 한다. 올해마저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다.

기온 상승 2도는 임계점이다. 만년설과 빙하에 반사되던 태양에너지가 그대로 바다에 흡수되면서 기온이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한다. 롤러코스터를 생각하면 된다. 처음에는 전기로 꼭대기까지 오른다. 그다음부터는 중력에 의존하여 저절로 떨어진다. 세울 수가 없다. 꼭대기에 도달하면 이미 늦다. 세우려면 그 전에 세워야 한다. 기후변화도 마찬가지다. 2도가 되고 나면 인류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 그 전에 막아야 한다.

우리는 기후 상승을 1.5도에서 막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최근 12개월을 보면 이미 1.5도를 넘어섰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인류가 당장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민들은 삶의 방식을 바꾸겠다고 한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덜 배출하기 위해 텀블러와 에코백을 사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소고기를 덜 먹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다고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대중교통은 더 편리하고 더 싸거나 무료가 되어야 하고, 강제로라도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하며, 농업, 관광, 금융, 건축, 축산 모든 분야가 새로운 길로 들어서야 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술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에너지 전환을 비롯하여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의 95%는 이미 존재한다. 실제로 기술을 쓰면 된다. 여기에는 온갖 문제가 발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금이 필요하며, 세금을 쓰기 위해서는 법을 만들어야 하고 법을 만드는 사람은 50일 후에 선출한다.

정동에 모인 시민들은 ‘기후정치’를 선언했다. 여야,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기후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협력하자는 것이다. 각 정당은 기후변화 대책 공약을 공식적으로 발표해야 하며 시민은 해결을 촉진할 사람들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

세이건은 1996년 암 병상에 누운 채 창백한 푸른 점에 대한 메시지를 온 인류에게 보냈다. “저것은 바로 여기입니다. 저것은 고향이며, 바로 우리입니다. 저기에는 당신이 이제껏 들어 온 모든 사람, 살았던 모든 인간, 살아왔던 그들의 삶이 모두 있습니다. (…) 우리의 행성은 광활한 우주의 어둠에 둘러싸인 하나의 외로운 얼룩에 불과합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를 구해 줄 도움의 손길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