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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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피해 당하고도 다시 반지하로…"기후위기, 주거권 위협"

최근 2년 새 최소 76명 기후위기 사망
취약지역 응답자 10명 중 9명 ‘심각’
“에너지성능 낮은 주택에 대한 장기적 지원 필요”
“침수 피해를 보고도 또다시 언덕에 있는 집 반지하로 이사했죠. 물난리를 겪지 않을 수 있고, 햇빛 비치는 지상으로 이사 가고 싶어요.”

 

2022년 8월 서울에 폭우가 쏟아졌다.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들에는 삽시간에 물이 들이닥쳤다. 침수로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한 여성 주민은 외출했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창문을 뜯어 가까스로 탈출했다. 당시 옆집에 살던 발달장애 가족 3명은 끝내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2022년 8월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집 안에 고립돼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의 반지하가 물에 잠겨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당시 침수 피해를 본 한 주민은 난리를 겪고도 다른 반지하로 옮겨갔다. “어젯밤 비가 쪼록쪼록 왔는데 신림동 지하에 살던 기억이 남아 잠이 안 왔다”는 그에게 주머니 사정상 반지하 말곤 선택지가 없었다. 신림동 한 공인중개사는 “2022년 사건 직후에는 반지하 입주자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결국 사람들이 다시 찾는다”며 “(인근 반지하 주택은) 월세와 관리비 포함해서 30∼40만원이고 보증금도 1000만원 안쪽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4일 발표한 ‘기후위기와 주거권에 관한 실태조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폭우와 태풍, 산사태, 대형 산불 등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최소 2022년 26명, 2023년 48명으로 집계됐다. 불과 2년 새 70명이 넘었다. 이들은 주로 거주지에서 변고를 당했다. 기후위기가 ‘적정 주거에 대한 권리’ 침해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용역 연구를 진행한 한국도시연구소는 산불피해지역 63가구, 침수피해지역 136가구, 농어산촌 157가구, 쪽방촌·이주민 거주시설 122가구 등 총 478가구를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와 기후위기 취약지역 현장조사를 벌였다. 쪽방촌이나 반지하처럼 취약거주시설 주민과 재난피해지역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곳에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4월 ‘강릉 산불 사태’ 당시 강원 강릉시 저동 펜션 밀집 지역에서 119 화재조사단이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응답자 10명 중 9명(89.9%)은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봤다. ‘보통이다’는 8.2%, ‘심각하지 않음’은 1.9%에 불과했다. 기후위기를 체감하는 요인별로 나눠 보면 ‘폭우·태풍·집중호우’(56.4%) ‘폭염’(47.7%) ‘산불·화재’(18.6%) 순으로 비율이 높았다. 

 

이들은 주거지에서 건강과 안전을 가장 위협하는 요소로 ‘습기·곰팡이’(60.3%)를 꼽았다. ‘수해’(43.3%) ‘폭염’(41.3%) ‘한파’(28.9%) ‘화재’(28.7%) ‘누전·감전’(13.2%) ‘균열·붕괴 위험’(10.5%)이 뒤를 이었다. 만들어진 지 40년 이상 지난 주거지에 사는 응답자로 좁혀서 보면 ‘폭염’(72.1%)과 ‘한파’(44.1%)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컸다.

 

이들은 정부의 재난 예방이 미흡하다고 응답했다. 연구진은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 대응을 7개 항목으로 나눠 점수를 매기도록 했는데, 이 가운데 6개 항목이 3점(보통) 미만으로 낙제 수준이었다. 최하점을 받은 항목은 재난 예방으로 2.16점이었다. 이 밖에 재난피해자 일상회복 지원(2.17점), 재난 발생 시 즉각적인 대처(2.22점), 전반적인 대응(2.3점) 순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주거지원을 받았다고 응답한 가구는 전체 응답자의 절반(48.3%)에도 미치지 못하기도 했다.

 

기후위기가 주거권을 위협하는 상황을 두고 연구진은 생태가 기본 구조와 기능을 유지하면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기후복원력’을 강조했다. 주택을 개량하고 개조해서 에너지효율도 개선하고 폭염이나 한파 등 기후재난에 따른 피해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침수방지시설 설치 등 현행 정책은 기존 주택관리 관련 제도를 개선하지 않은 임시방편에 가깝다”며 “주택 대량공급 시기에 지어진 에너지성능 낮은 주택의 기후복원력을 높일 수 있도록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