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24일로 2주년을 맞는다.
2022년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명령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을 때, 사람들은 전쟁이 이렇게까지 오래 이어질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치열한 혈투가 벌어졌던 우크라이나에서 80년만에 피비린내 나는 재래식 전쟁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세계에 전쟁 상황이 생중계됐던 ‘정밀타격의 신화’ 걸프전이 벌어진 지 30여년 만에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가 걸프전을 통해 알던 현대전의 상식을 뿌리째 흔드는 모양새다.
◆세계는 걸프전 함정에 빠졌나
1991년 걸프전은 기존의 전쟁 상식과는 전혀 달랐다.
짧지만 강도 높은 정밀타격과 공중 폭격으로 적을 압도한 뒤 전격전을 벌여 단기간 내 전쟁을 끝내는 걸프전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걸프전이 미래 전쟁의 대표적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디지털 기술과 정밀유도무기가 있으면, 예전보다 더 적은 돈과 규모가 더 작은 군대를 갖고도 큰 희생을 치르지 않은 채 속전속결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개념이었다.
걸프전으로 대표되는 첨단 기술전쟁은 압도적인 정밀타격력으로 적을 빠르게 무력화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전쟁 수행 기간이 매우 짧다.
대량의 군수품을 비축할 필요도, 거대한 군수지원체계나 야전정비능력을 갖출 필요도 크지 않다. 정비 및 운영유지체계가 복잡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차 등의 기갑장비는 약간의 개량만 해도 충분했다. 공중 공격과 정밀타격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에 따라 1990년대부터 ‘짧고 굵은’ 정밀타격 전쟁을 위해 정교하고 우수하지만 값이 비싸고 정비에 시간이 걸리는 첨단 무기 개발·생산이 각광받았다.
세계 각국 군대는 군수·정비 등 비전투부대를 축소 또는 외주화하고 군수품 재고를 줄였다. ‘군대는 싸움에만 집중하고 나머진 민간군사기업(PMC)에 맡겨라’는 풍조가 유행했다. 방위산업 생산역량은 감소했다.
대량파괴를 피하면서 전쟁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는 효과기반작전(EBO), 빠른 공격을 통해 적의 중심부를 흔들어서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충격과 공포 작전 등이 강조됐다.
반면 전차와 탄약 등의 재래식 무기 개발·생산은 정체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 미군의 155㎜ 포탄 생산량은 월 1만4000발 수준에 불과할 정도였다.
군대 규모는 줄었고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꾸는 국가도 생겼다. 걸프전이 가져다 준 ‘장밋빛 환상’, 단 한 번의 첨단 기술전쟁으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에 따른 것이었다.
이같은 환상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여지없이 깨졌다.
러시아군은 개전 초기 정밀타격과 폭격으로 우크라이나 주요 시설을 타격하고 지상군을 투입했다. 투입된 지상군은 단기간 내 전쟁이 끝나고 안정화 작전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걸프전 방식은 적보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기술을 지녔을 때 효과가 있다. 통계상으론 우크라이나군을 압도하는 군사력과 기술을 지닌 러시아가 속전속결로 이길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과 시민사회는 전쟁이 발발하자 다양한 종류의 군사과학기술과 전술을 유연하게 적용·발전시켜 군사력 격차를 메워버렸다. 공군력이 미약했던 우크라이나군이 드론으로 정찰과 공습을 수행, 러시아군을 몰아붙인 것이 대표적이다.
단기결전에 실패한 러시아는 2차 세계대전 시절 물량 공세로 전환했다. 대규모 포격을 퍼붓고, 병력과 장비를 끊임없이 투입했다.
우크라이나는 군사력 격차를 창의성과 기술로 메웠지만, 물량의 차이는 메우는데 한계가 뚜렷했다. 최근 전황이 불리해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국이 내세웠던 ‘충격과 공포’ 대신 ‘물량 전쟁’이 주목받는 이유다.
◆한국도 ‘걸프전 함정’ 경계해야
걸프전에 자극받은 한국군은 1990년대 중반 입체고속기동전 개념을 제시했다. 적진 깊숙히 기동해 적의 전투의지를 마비시키고 최소한의 전투로 결정적인 승리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입체고속기동전은 문재인정부 시절 입체기동작전으로 바뀐다. 지상군 위주였던 입체고속기동전에 다양한 군사적 수단을 추가, 3차원적 작전 개념을 만들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볼 때, 한반도 유사시 평양을 조기 점령해 전쟁을 신속히 종결하는 첨단기술전쟁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여름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을 앞두고 러시아군은 폭 20~30㎞에 걸쳐 지뢰밭과 대전차 콘크리트 방어물, 참호 등을 설치하고 드론을 띄워 감시를 했다.
우크라이나군이 걸프전이나 이라크전쟁 당시 미군처럼 대규모 기갑부대를 앞세워 신속하게 전선을 돌파, 러시아군의 전투의지를 무너뜨리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했다.
북한은 100만명이 넘는 정규군과 수백만 예비군을 갖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저가 드론과 방사포 등으로 한국군을 노린다.
한·미가 압도적 공군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제공권 장악이 가능하지만, 북한 정규군과 예비군을 제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엔군이 제공권을 장악했던 6·25 전쟁에서 미군은 공중 폭격으로 북한 전역을 초토화했다. 북한은 휴전 직후 6·25 전쟁 교훈을 토대로 지하시설 구축 등을 수십년에 걸쳐 추진했다.
또한 기술적 난도가 낮고 저렴한 드론의 개발·생산 능력이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입증했다. 이같은 드론은 공군 레이더가 포착하기 어렵고, 육군은 가격 대비 효과 측면에서 대응책 마련이 쉽지 않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처럼 값싼 무기로 고가의 한국군 첨단무기를 부수고 드론으로 한국군 움직임을 공중에서 감시하며 공격할 능력을 지녔다면, 공군력을 비롯한 남북 군사력 격차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군대의 규모를 키우고 방위산업 역량을 높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양을 크게 늘리면, 그것은 질로 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물량공세처럼 상대방의 전략을 무력화할 수 있다.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이 예비군 30만명을 동원하고, 유럽 각국에서 징병제 재도입이 거론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한국군은 인구절벽에 따른 군 규모 감소가 불가피하다. 예비군 동원 체계를 효율화하거나 복무기간 조정 등의 방법으로 유사시 투입할 병력 규모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 그래야 북한의 양적 우위에 맞설 억제력을 지닐 수 있다.
군대의 규모를 뒷받침하려면 무기를 신속하게 대규모로 생산할 능력도 필수다.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장비 소모가 심해질 것에 대비, 방위산업 구조를 ‘대량획득, 대량소모’ 기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재편할 필요가 있다.
생산 및 정비 시간을 줄이고 장병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나치게 복잡한 무기보다는 단순하고 튼튼하며 신뢰성이 검증되고 정비가 편리한 무기를 개발·제작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크라이나에 지원된 독일산 레오파르트2 전차는 예비부품 부족에 정비의 복잡성 등이 겹쳐 수리기간이 길어졌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정비가 어려워 리투아니아나 폴란드 등 주변국으로 보내야 했다.
미국산 M777 곡사포는 격렬한 포격전 와중에 포신이 마모됐는데, 현장 정비가 불가능해 폴란드에서 마모된 포신을 바꿨다. 이는 전투 수행에 지장을 초래한다.
이와 관련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쓰였던 전차들의 사례는 좋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당시 등장했던 전차 중에서 미국산 M4 전차는 최고의 전차로 평가받고 있다. 성능 면에선 나치 독일 티거, 판터 전차보다 뒤지지만 M4 전차가 높은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생산성 때문이다.
M4 전차는 1945년 7월까지 4만8000대가 생산, 가장 빠른 전차 생산 속도를 기록했다. 막대한 물량이 생산된 덕분에 미군, 영국군, 프랑스군, 소련군 등에서도 대량 운용됐다.
기존 기술을 활용, 개발도 1년 만에 이뤄졌다. 부서져도 수거해 정비하면 재투입할 수 있었다.
M4 전차의 신속한 대량생산과 정비능력은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장기전·소모전·전면전 상황에선 매우 중요한 요소다. 오늘날에도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30여년 전의 걸프전에서 등장했던 첨단 기술전쟁이 만능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냈다.
세계에서 군사력 밀도가 가장 높다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걸프전처럼 정밀타격을 하는 첨단 기술전쟁 대신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길고 어려운 장기전으로 전개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첨단기술 개발 못지 않게 군 규모와 구조를 개편하고, 무기를 빠르게 대량생산할 기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