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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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의대도서관] 진실을 향한 사실 찾아가기

각자 바라보는 세상이 진실이라는 착각
아는 것과 다른 사실도 꼭 찾아봐야

소설에는 시점(視點)이 중요하다. 시점에 따라 보고 말하는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3인칭은 서술자가 작품 밖에 있다. 타인의 눈으로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1인칭은 서술자가 작품 안에 있다. 자신의 눈으로 모든 것을 주관적으로 바라보지만, 그 목소리에 깊이가 있다. 지식에도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이 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들은 3인칭 지식이다. 세상이 그렇다고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나 내가 그렇다고 하는 것들도 있다. 이른바 1인칭 지식이다. 흔히 사실은 3인칭 영역에 속하고 사실에 관한 나의 진실은 1인칭 영역에 속한다고들 하지만 이는 소설의 시점 구분이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굳어진 결과일 뿐 현실에서의 우리 시점은 그렇듯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답지 않게 나는 ‘종이’ 신문을 본다. 종이 신문을 볼 수 없는 상황이면 웹으로 대체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조차 지면 보기 서비스를 이용한다. 신문에 대한 내 집착은 정확히 말하면 신문 ‘지면’에 대한 집착이 맞겠다. 문학 출판이라는 업종에 속해 있는 탓이 크다. 여성 친화적인 분야의 특성상 창작자, 제조자, 소비자가 대체로 여성이고 그중에서도 소비자는 절대적으로 여성에 집중돼 있다. 자연히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이야기로,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로 내 렌즈는 좁혀져 있다. 이렇듯 특화된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내가 사는 세상이 내 눈에 보이는 세상과 일치한다는 뻔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뻔한 착각에 빠지는 까닭은, 편협함이 전문성의 속성과 자주 혼동되기 때문이다.

종이 신문은 내 편협한 인식에 찬물을 끼얹는다. 지면을 채우고 있는 성별은 내가 속한 세계와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전·현직 국회의원, 운동선수들과 그들의 감독, 용의자와 경찰관, 의사와 행정가, 종교인과 경제인…. 그날그날의 ‘갈등물’에서 활약하는 주조연은 남성 일색이다. 세상사에 기록되는 사건사고에서 여성은 대체로 특별 출연이거나 조연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중심으로 편집된 세상을 산다. 그러나 그것이 특정한 기준으로 편집된 세계임을 잊어버리면 인식과 현실의 간극이 커진 나머지 적확한 시야를 확보할 수 없게 된다. 세상이 우리에게 집중과 디테일을 요구하며 그것을 전문성이라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 가져다줄지 모를 편협함을 경계해야 한다. 삶에는 현미경만이 아니라 망원경도 필요하고 만화경도 필요하다.

안온 작가의 산문 ‘일인칭 가난’(안온 지음)은 1997년에 태어나 20년 동안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청년이 ‘가난’이란 무엇인가라는 3인칭 질문에 대해 내놓은 1인칭 대답이다. 사실 가난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사회에는 가난에 대한 클리셰가 있고 전형에서 벗어난 가난은 수급정책 같은 제도에서 소외될 뿐 아니라 가짜 가난으로 오해받거나 고립되기도 쉽다. 저자는 가난에 대한 자신의 공적 사적 체험을 동시에 꺼내 놓음으로써 행정 기준에 붙박힌 채 그 의미가 박제돼 버린 ‘죽은 가난’을 ‘살아 있는 가난’으로 부활시킨다. 고등학교 사회시간에 부채 비율, 근저당권, KB 시세를 배웠더라면 LH 전세 임대 공고문을 읽고 이렇게 머리가 지끈거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담담히 회고하는 저자에게 학교에서 가르쳐준 3인칭 가난과 자신이 마주하며 깨달은 1인칭 가난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1인칭화된 삶에 3인칭화된 정보를 보완하는 나와 3인칭화된 가난을 1인칭화된 가난으로 풀이하는 저자의 공통점은 세상을 실감하기 위해 다초점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1인칭적 사실도 있고 3인칭적 사실도 있다. 소설이 허구의 장르인 만큼 소설의 시점도 현실에 갇혀 있지 않다. 소설이 허구를 통해 드러내는 것은 진실이고 시점은 진실에 이르기 위한 최적화된 경로다. 우리가 1인칭과 3인칭 사이를 헤매며 진실에 다가가는 것도, 내가 종이 신문을 넘기며 세상의 주인공을 확인하는 것도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시점 찾기다. 다 볼 수 없다 해도, 다 보려 애써야 한다.
 

박혜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