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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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70년 전통 민주당의 ‘환골탈태’

‘친명 횡재, 비명 횡사’ 공천 파동
이재명 체제 보호 세력 만드는 것
이석기 통진당 후신과도 손잡자
당 원로들 “당 정체성 훼손” 반발

정대철 헌정회장, 권노갑 김대중재단이사장, 이훈평 전 의원 등은 최근 식당에서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던 손님이 “(더불어)민주당이 저 꼴인데 민주당 원로라는 분들이 도대체 뭘하고 있냐”고 따지더란다. 정 회장은 “깜짝 놀랐다. 그래도 (민주당에)애정이 있으니까 한 소리겠지만 할 말이 없더라”고 했다. 원로들이 가만 있지는 않았다. ‘비명(비이재명) 횡사’ 공천 파문이 커지자 김부겸·정세균 전 총리는 “이재명 대표가 바로잡으라”고 했고, 권노갑·정대철 등 원로들도 “공천이 당 대표 사적 목적을 채우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성명을 냈다.

총선처럼 민감한 시기에 당 원로, 중진들이 나서면 당 대표는 일단 경청 모드로 바꾼다. 이 대표는 달랐다. “시스템 공천”일 뿐이라며 책임론을 일축했다. 그는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진통으로 생각해달라”고 했는데 맞는 얘기다. 지금 민주당에서는 비명계 인사들을 빼고 친명(친이재명) 사단으로 채우는 ‘환골탈태’가 진행 중이다. 이 대표 체제에 반론을 펴거나 중립 지대에 머물렀던 의원들이 줄줄이 공천 낙제점을 받았다. 불공정 공천을 우려한 김·정 전 총리 기사에 “이참에 반명 패거리들 전부 내칩시다” 식의 댓글이 쏟아졌다. 공천 흐름이 딱 그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황정미 편집인

이번에 하위 10%, 20% 통보를 받은 비명계는 사전기획설을 주장한다. 공천 배제 리스트가 작성됐고 일부 여론조사기관, 친명 인사 중심의 선출직공직자평가위에서 맞춤형 결과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0점도 있다”고 확인한 다면평가나 정성평가 점수는 물론 기준조차 비공개이니 억측이 난무한다. 결과적으로 드러난 하위 그룹 면면을 보면 지난해 9월21일 국회에서 통과된 이재명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당시 30명 넘는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 또는 기권표를 던진 것으로 파악됐다.

비명계 의원뿐 아니라 당 원로들조차 이 대표가 ‘9·21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방탄 정당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22대 국회에서 이재명 체포동의안을 일사천리로 부결시키는 게 이 대표 1차 목표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대표와 측근 그룹은 차기 대선까지 더 큰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21대 국회에서는 사법리스크를 피할 수 있었지만 재판 진행을 감안하면 22대 국회에서 실형 선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판사 출신 이수진(서울 동작을) 의원은 컷오프되자 백현동 개발특혜 의혹 사건만으로도 이 대표는 법망을 빠져나갈 수 없다고 했다.

이 대표에게는 자신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끝까지 보호해줄 세력이 필요하다. 무난히 공천장을 받은 친명계 의원들과 경기도지사 선거, 대선을 도왔던 측근 출신이 방패막이다. 대장동·성남FC·백현동 특혜사건과 위증교사혐의, 대선 경선자금 수사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 또는 측근들을 변호해온 변호사들도 대거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이 당선된다면 서초동에서 그랬듯 여의도에서 이 대표를 위해 싸울 것이다. 이 대표가 총선 인재로 영입한 이성윤 전 검사장 등 ‘반윤 검사’들도 마찬가지다.

이 대표가 단독 결정한 ‘야권 위성정당’을 통해 여의도행이 실현된 통합진보당(통진당) 후신 진보당 등 좌파 인사들도 그의 우군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통진당 주축인 경기동부연합 세력은 이 대표 측과 성남시장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천 논란 못지않게 당 원로들이 반대하는 게 이들 조합이다. 통일이 돼도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김대중 노선과 한·미동맹 해체를 주장하는 ‘이석기 그룹’이 손을 잡을 순 없다는 비판이다.

민주당은 내년이면 창당 70주년을 맞는다. 2020년 당 대표로 창당 65주년 기념식을 주관했던 이낙연 전 총리는 지난달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됐다”며 탈당했다. 누구보다 오래 당을 지켰던 원로들은 당내 민주주의, 정체성 훼손을 걱정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이 대표가 공언한 ‘이재명의 민주당’ 만들기는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민주당이 낯설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


황정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