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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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죽지 않고 살고 싶다” 소방관들 외침, 정부는 귀 기울여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소방본부에 속한 소방관과 가족 1000여명이 어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부근에서 ‘7만 소방관 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소방관들이 외친 “죽지 않고 살고 싶다”라는 구호에 그들이 처한 열악한 근무 여건이 드러나 있다. 평소 제복 공무원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 처우 개선을 약속해 온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마땅하다.

 

집회에 참가한 소방관들은 “불과 두 달 전 제주에서 한 소방관을 떠나보내고 쓰라린 가슴을 달래기도 전에 경북 문경 화재로 두 분의 젊은 소방관들을 또다시 보낸 우리 가슴이 찢어질 듯 시려온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2월 서귀포 주택 화재 당시 80대 노부부를 구하고 숨진 임성철 소방장과 지난달 문경에서 공장에 난 불을 끄다가 숨진 김수광 소방장, 박수훈 소방교를 애도한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재난 현장에 뛰어들었다가 희생된 소방관들의 사연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순직한 소방관만 40명에 이른다. 소방관을 잃을 때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던 정부는 그동안 대체 무엇을 한 건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0년 지방공무원 신분이던 소방관을 국가공무원으로 전환했다. 그런데 소방 분야 인사와 예산은 중앙이 아닌 지방정부 권한으로 남겨둔 탓에 아직 온전한 국가직이 아니라는 게 일선 소방관들 주장이다. 선출직인 지방자치단체장들 입장에선 가용 예산을 소방관 충원이나 소방 장비 확보보다는 선거 표심을 잡기 위해 선심성 사업에 쓰고 싶기 마련이다. 소방청 통계를 보면 2018년 5600여명이었던 전국 지자체의 소방관 신규채용 인원이 국가직 전환 이후인 2022년에는 1890명으로 줄었다. 지난해의 경우 새로 뽑은 소방관은 138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번 집회를 계기로 정부는 인력 증원 등 소방관들의 요구 사항을 면밀히 살펴 개선이 필요한 점은 시급히 고치고, 검토가 좀 더 필요한 부분은 소방관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순직 소방관의 예우 격상은 물론 유족에 대한 배려 확대도 절실하다. 오늘 국가보훈부 주관으로 국방부, 경찰청, 소방청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전몰·순직 군경 및 공무원 자녀와 그 보호자 지원 강화를 위한 첫 관계부처 합동 실무회의가 개최된다. 목숨 걸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제복 영웅들의 헌신을 기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