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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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복귀 면허정지” 압박에도 전공의들 응할지는 미지수 [의료대란 ‘비상’]

정부 ‘29일 마지노선’ 통보

비상진료 전임의, 2월 말 계약 종료
‘이탈’ 도미노 땐 진료 공백 심각 판단

3월 4일부터 수사·기소 강행 시사
경찰, 의협·대전협 집행부 수사 착수

정부 “의료계 대표 협의체 구성” 제안
의협 “비대위가 전권 위임 받아” 일축

정부가 오는 29일을 전공의들의 ‘복귀 마지노선’으로 제시하는 강경한 발언과 함께 정원 규모 협상 가능성을 시사한 건 ‘3월 의료 대란’ 확산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들의 ‘사직 러시’가 일주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전공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전임의(펠로)의 이탈 조짐과 의대 졸업생들의 인턴 임용 포기, 교수들까지 동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의료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전공의들이 정부 요청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다음 달부터 대규모 행정·사법 절차가 개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은 의사 단체 집행부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나섰다.

정부 의대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하는 전공의 단체행동이 일주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26일 서울시내 한 대형 종합병원에서 환자 및 보호자들이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최후통첩, ‘3월 의료 대란’ 의식한 듯

 

의사 단체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26일 근무지 이탈 전공의들에게 “오는 29일까지 근무지로 복귀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이날까지 근무지에 복귀하는 전공의에게는 현행법 위반에 대해 최대한 정상 참작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29일을 제시한 데 대해 “지금 갈등하고 있을 전공의들에게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는 것”이라며 “이날까지 복귀하는 경우에는 그 이전의 명령 위반에 대한 처벌을 묻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전공의 복귀 시한을 29일로 제시한 것은 교수들과 함께 비상진료체계를 구성한 전임의의 계약 시점이 이달 말까지인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임의는 전공의 과정을 마친 의사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전공 세부분야별 의료 기술을 배우거나 교수가 되기 위해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다. 통상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년 단위로 병원과 계약한다. 최근 전공의들 대거 이탈로 업무가 가중되자 전임의들도 의료 현장을 떠날 조짐을 보인다. 의대 졸업생들의 인턴 임용 포기도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각지의 수련병원에서 의대 졸업생들의 수련 계약 서명 거부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전공의 이탈 사태가 장기화하면 의료 인력 부족 및 의료진의 피로도 누적 등으로 진료 차질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데드라인을 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인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복귀 전공의 최소 3개월 면허정지”

 

정부가 마지노선을 제시한 것은 29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집단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적, 사법적 처벌을 강행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대본은 3월부터 미복귀자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과 수사, 기소 등 사법 절차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면허정지 처분은 그 사유가 기록에 남아 해외 취업 등 이후 진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3월 첫째 주 월요일인 4일부터 채증 작업 등을 거쳐 행정조치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박 차관이 의대 정원 확대 규모 2000명에 대해 “(전공의가 병원에 복귀하면) 논제는 분명히 삼을 수 있는 것”이라며 대화를 제안했지만, 전공의들은 아직 ‘29일 복귀’에 회의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공의들이 들어가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정부가 전공의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며 “정부가 그런 식(사법 조치)으로 대응해서 전공의나 의사가 물러설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의대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하는 전공의 단체행동이 일주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26일 서울시내 한 대형 종합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정부의 전공의 행정처분 거론에 대해서는 “치졸하다”고 날을 세웠다. 주 위원장은 “자율적 의사에 의해 본인의 꿈을 접겠다고 말한 전공의에게 사법 조치를 하는 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행정처분과 별개로 의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의사단체 집행부에 대한 고발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전공의 수사에 대해 “고발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수사할 수밖에 없다”면서 “의협 핵심 관계자들과 대전협 집행부를 대상으로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협의체 구성해 달라”

 

의료계의 대화 공식 창구가 없는 것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박 차관은 “의료계에서 전체 의견을 모을 수 있는 대표성 있는 구성원을 제안해 달라”며 “집단행동이 아닌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의료 개혁의 발전 방안을 논의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근 의대 교수들 사이에서 의협이 이번 사태에서 대표성을 띨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현재 의료계 집단행동의 주체가 전공의인 만큼 이들의 스승인 교수들과 협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의협 비대위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협은 불쾌한 기색이다. 의협은 “의협 비대위가 협상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기 때문에 따로 (조직을) 구성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주 위원장은 “의협 대의원총회는 비대위에 현 상황에 대한 투쟁과 협상의 전권을 주기로 의결했다”며 “대의원총회에는 개원의만 있는 게 아니라 전공의, 전임의, 공보의, 교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정진행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23일 박 차관과 회동한 데 대해 주 위원장은 “그분(정 위원장)의 입장이 그 대학(서울대 의대) 전체 교수들의 입장이 아니었다”며 “그분은 이 문제를 잘 해결해 보겠다는 충정에서 시작했겠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다른 교수들은 마치 그 교수와 같은 의견인 것처럼 오해받는 것을 힘들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래서 오늘 비대위원장 자리를 본인이 내려놓으신 것”이라고 부연했다. 정 위원장은 이날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정 위원장은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2기 비대위 출범을 논의 중”이라면서 “1기 비대위는 민심 얻기와 사태 본질 규명을 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2기는 대안 제시와 사회적 협의체 구성 등 실무를 담당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정우·조희연·백준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