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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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대기업 일자리 부족, 입시경쟁·저출산 불러”

“중소기업 지원 정책 재검토해야”

좋은 일자리에 해당하는 대기업 일자리 부족 현상이 대학 입시경쟁 과열은 물론 출산율 하락 등을 불러오고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진단이 나왔다. 대기업 일자리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만큼 생산성이 낮은 중소기업에 대한 과도한 지원 등 기업규모 확대를 가로막는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고영선 선임연구위원(연구부원장)은 이런 내용을 담은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 보고서를 27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대기업으로 볼 수 있는 300인 이상 사업체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비중은 전체 종사자 기준 14%, 임근근로자 기준 18%에 불과했다. 대기업에 대한 청년들의 취업 선호도가 64%에 달했지만 실제 일자리 현황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뉴시스

250인을 기준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하는 OECD 기준을 적용할 경우 한국의 대기업 일자리 비중은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250인 이상 기업이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그쳤던 반면 독일(41%), 스웨덴(44%), 영국(46%), 미국(58%)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사업체 규모별 임금 격차도 컸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2022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보수) 결과’를 보면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소득은 월 591만원(세전 기준)이었지만 중소기업 근로자는 월 286만원에 머물렀다. 아울러 30인 미만 사업체의 경우 출산전후휴가제도가 필요한 사람 중 일부 또는 전부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30%에 달하는 등 임금 외 다른 조건에서도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열악했다.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는 대기업 일자리의 부족은 입시경쟁의 과열로 이어진다고 고 부원장은 분석했다. 4년제 일반 대학을 수능성적에 따라 5개 분위로 구분한 후 1분위(하위 20%)부터 5분위(상위 20%) 대학 졸업생의 평균임금을 연령대별로 계산한 결과 1분위 대비 5분위의 임금 프리미엄은 20대 후반(25∼29세) 25%, 30대 초반(30∼34세)에 34%, 30대 후반(35∼39세)에 46%로 점차 늘었다. 40대 초반(40∼44세)에는 51%로 정점을 찍었다. 1분위가 평균 임금 5000만원을 받을 때 5분위는 약 1.5배인 7500만원을 받는다는 의미다. 이후 은퇴 시기와 맞물리면서 45∼49세에 33%, 50∼54세에 10%, 55∼59세에 1%로 낮아졌다. 고 부원장은 “상위권 대학 졸업자들은 임금 뿐 아니라 정규직 취업, 대기업 취업, 장기근속 등에 있어서도 유리한 것으로 나타난다”면서 “정부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교육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결국 좋은 일자리의 부족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아울러 중소기업에서 육아휴직 제도 등을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고, 경력단절 이후 재취업시 여성들의 상용근로자 비중이 36.7%포인트 하락하는 등 낮은 출산율 및 여성고용률 역시 좋은 일자리 부족에서 비롯되는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고 부원장은 덧붙였다. 그는 “수도권 집중 현상도 결국 비수도권에 대기업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며 정부도 기업의 규모화(스케일 업)를 저해하는 정책 요인을 파악해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보고서는 제언했다. 중소기업 중에서 생산성이 낮은 기업이 도태돼야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중견기업 혹은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데, 정부의 과도한 정책지원은 역동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 부원장은 “정부는 무수히 많은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들의 효과성을 점검하고 혹시 기업의 규모화를 저해하고 있다면 개선해야 할 것”이라면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등의 정책과 대기업 경제력 집중 관련 정책도 이런 측면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