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겨울비 내리는 출근길 신호등 앞. 바로 옆에 휴대전화를 눕혀 들고 들썩거리며 춤을 추는 남성이 있다. 빡빡머리다. 중국인인 모양이다. 큼직한 점퍼에 맨발이고 삼선슬리퍼를 신었다. 중국 사람 맞다. 신호가 바뀌고 같이 횡단보도를 건넜다.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아뿔싸! 난 정말 깜짝 놀랐다. 누구나 아는 트로트도 아니고 김광석 노래를 한국 사람 억양으로 부르고 있다. 그냥 노래에 취한 낭만가객 한국 남성이었다.
출근길 일화가 내면을 들킨 것 같아 며칠을 맴돌았다. 왜 그를 중국 사람이라고 치부했을까?
가리봉동에서 중국 사람은 한국 사람보다 많다. 같은 골목을 누비고, 같은 버스에 매달리고, 같은 마트를 이용한다. 그들을 외면하거나 비켜 가지 않고 지냈다. 평등하다고 생각했으며 존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의식의 이면에 이런 편견이 있었나 보다.
며칠 돌이켜 보니 골목에서도 버스에서도 마트에서도 늘 구별했다. 그들이 말없이 있을 때도 함께 있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나의 구별 짓기의 실체는 무엇일까? 여성은 별로 다르지 않다. 이곳 가리봉도 중국 여성이라고 해서 더 촌스럽던 때는 지났다. 가끔 중국동포 억양이나 중국어가 스쳐야 ‘그렇구나’ 한다. 그런데 가리봉의 남성은 다르다. 고유의 헤어스타일, 큼직한 점퍼, 먼 과거에서 상경한 분위기. 저절로 구별된다.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대우를 받거나 중년까지 축적된 품위는 찾아볼 수 없다. 낭만가객도 그래서 오해를 받았다. 그러니까 편견의 실체는 국적보다 가난이었다.
외모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직업을 알려 주고 목욕과 세탁이 제한적인 주거환경을 알려 주고 단조로운 사회적 관계를 알려준다. 그래서 외모만으로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식별할 수 있고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을 가늠할 수 있다. 물론 편견이란 부작용을 안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관리하는 것은 의식적인 노력이 작동하는 이성의 영역이지만 없는 사람에 대한 편견은 자본주의 세례를 받은 나에게 자동적인 감정의 영역이었나 보다. 국적보다는 가난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한발 앞섰다.
엊그제 움틈학교 수료식을 했다. 수료생 엄마가 소감을 말했다. 재혼을 했노라고 남편의 전혼 자녀가 이 수료식에 새엄마인 자신을 초대해줘서 고맙다며 흐느꼈다. 아이들에게도 덕담을 했다. 중국 교훈에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라’는 말이 있다고 지금 한국에 와서 넘어질 일이 많겠지만 괜찮다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했다. 서툰 한국어를 뚫고 진주 같은 존재감이 뿜어져 나왔다. 교장인 나의 훈화가 무색했다.
중국 학부모의 이야기는 그녀를 서툰 한국어 속에도 고난을 겪은 사람만이 가 닿을 수 있는 따듯하고 성숙한 존재임을 알게 했으나 매일 스치는 가리봉의 외국인 노동자는 그 존재에 다가갈 기회가 없다. 한때 노동력을 제공하고 떠나가는 가리봉의 풍경에 그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력을 제공 받는 이들에게는 단지 노동력이 아니라 나름의 서사가 있는 한 사람의 존재가 되길 바란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