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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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들의 '시계 정치' 살펴보니 [김범수의 소비만상]

‘대통령 시계’의 역사…시계와 정치의 관계(上)

정치인과 시계는 훌륭한 ‘정치적 동반자’ 관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계는 필수품이었고,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시계는 고가의 귀중품에 속했다. 또한 과거 손목시계는 오늘날 스마트폰처럼 ‘1인 1시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귀중품인데다가 ‘내 몸 처럼’ 매일 붙어다니는 특성 때문에 손목시계는 현대사회에서 ‘포상’의 역할을 했다. 불과 몇 십년전만 하더라도 지도자는 손목시계를 부하나 대중들에게 하사해 충성심을 이끌어냈고, 지도자의 서명이 적힌 시계를 가보로 취급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도 자신의 이름이 적힌 ‘대통령 시계’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진영을 막론하고 한국사에서 거의 모든 대통령이 ‘시계 정치’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시계의 역할과 디자인에 대해 2회에 걸쳐서 알아보도록 한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라 대통령 시계에 대해 기사를 쓰는 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오해를 일으키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미리 말하지만 이 기사는 정치적인 의도가 전혀 없으며, 그저 대통령 시계의 역사와 디자인 등을 알아보자는 취지다.

 

◆‘박정희 시계’와 ‘김일성 시계’...시계의 냉전

우리나라 최초의 대통령 시계인 '박정희 시계'는 다른 대통령 시계와 다르게 기계식 무브먼트를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 첫 대통령 시계로 알려진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명이 있는 시계다. 이전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있었지만, 전해지는 ‘이승만 시계’는 없다. 한국전쟁 이후 당장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던터라 당시에는 고가였던 시계를 포상으로 지급할 여력도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통령의 서명이 있는 이른바 ‘박정희 시계’는 역대 대통령 시계 중 유일하게 일본제 기계식 시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특별히 기계식 시계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배터리가 들어가는 ‘쿼츠 시계’는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쿼츠 시계로 알려진 세이코(Seiko)의 ‘아스트론’이 1969년 개발됐지만, 당시 쿼츠 무브먼트는 기계식 시계보다 더 고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쿼츠 시계의 단가가 낮아지면서 기존의 시계 산업의 패러다임을 뒤흔든 ‘쿼츠 파동’이 일어났지만, 공교롭게도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시기와 겹친다. 또한 국내 시계 제조업체에게 제작을 의뢰하기에는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일본의 세이코, 오리엔트, 시티즌 등의 업체에 제작을 의뢰했다.

 

기계식 시계라는 점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인기 때문에 현존하는 중고시장에서 대통령 시계 중 가장 비싸게 거래된다. 또 다른 대통령 시계들보다 희귀하다는 것도 비싼 몸값에 한 몫 한다. 당시에도 기계식 시계는 비싼 가격을 자랑했기 때문에 아무리 대통령일지라도 쉽게 시계를 뿌리지 못했다. 따라서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이 가장 길었어도, 박정희 시계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게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가 좋은 시계  수도 적어지는 추세다.

스위스 오메가(Omega) 컨스텔레이션 모델에 자신의 이름을 넣은 '김일성 시계'. 김일성 시계는 철처히 포상 정치에 이용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척점에 있던 북한의 김일성 주석도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시계를 포상으로 활용했다. 이른바 ‘김일성 시계’는 디자인적으로나 성능으로보나 ‘박정희 시계’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시계는 김일성이 무려 스위스 고급 시계 브랜드인 오메가(Omega)에 직접 주문을 넣어 제작한 시계로, 오메가의 ‘컨스틸레이션’(Constellation) 모델에 자신의 이름을 박아 넣었다. 사실상 오메가 시계의 ‘김일성 에디션’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이 어떤 의도로 오메가에 시계 제작 의뢰를 한 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고가의 시계를 포상으로 활용하면서 충성도를 극대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가의 포상일수록 충성도가 더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이 한국보다 더 잘 살던 시기였다. 그만큼 ‘최고존엄(?) 시계’에 돈을 쓸 여력도 많았다.

 

게다가 김일성은 이 같은 ‘시계 포상’을 적극 활용한 케이스고, 북한에서 유일한 ‘존엄시계’로 남았다. 그의 아들인 김정일이나 손자인 김정은은 시계를 활용하는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끝난 오늘날에는 북한에서나 보물 대접을 받을 뿐, 우리나라나 해외에서는 컬트적인 시계를 수집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인기가 없다.

 

◆‘신군부’와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 시계 

전두환 정권 때 제작된 시계(왼쪽)와 처음으로 사각형 디자인을 도입한 '노태우 시계'.

1980년대는 ‘신군부 정권’의 시대였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인 ‘서울의 봄’을 통해 다시 회자된 전두환 씨는 의외로 시계를 활용한 정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전씨의 경우 시계보다는 불시에 관공서나 기업을 방문해 ‘회식비’ 차원으로 포상을 하는 ‘돈봉투 정치’를 더 즐겼다.

 

이 때문인지 전두환 세 글자가 들어간 시계는 흔치 않다.  다만 자신의 이름이 없는 ‘포상 시계’는 존재했는데, ‘모범당원상’ 같은 문구가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굳이 분류한다면 이 시계도 ‘전두환 시계’지만, 사실상 중고시장에서 퇴출되다시피 했다. 대통령 시계는 그 대통령의 인기를 반영한다. 가장 인기가 없는 대통령은 그 시계마저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디자인적으로 훌륭하나면 이전의 ‘박정희 시계’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계부터는 본격적으로 쿼츠 무브먼트가 탑재되기 시작했다. 쿼츠 무브먼트 탑재로 시계 제작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면서, 생산되는 대통령 시계는 크게 늘어났다. 대통령 시계는 더 이상 소수를 위한 시계가 아니게 됐고, ‘포상’이라는 개념에서 점차 ‘기념품’으로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노태우 시계’는 대통령 시계 중 처음으로 사각형 디자인의 시계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오늘날에도 사각 디자인의 시계는 둥근형태보다 쉽게 볼 수 없다. 자칫하면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태우 시계’는 시대를 앞서(?) 사각형으로 만들어졌고, 생각 외의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역대 대통령 시계 중 사각형 디자인을 채택한 대통령은 많지 않기 때문에 디자인 적으로 희소성이 있다.

닮은 듯 다른 듯 '김영삼 시계(왼쪽)'와 '김대중 시계'.

1990년대 대통령이자 ‘삼김시대’ 중 두 명인 김영삼과 김대중 전 대통령도 기념품으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시계를 제작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한 때 정치적 동지였던 두 대통령은 시계도 어딘가 닮았다. 당시의 보편적인 디자인이었던 정장에 어울릴 법한 ‘드레스워치’ 형태의 원형케이스와 금장을 선호했다. 또한 중고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도 거의 비슷하다.

 

다만 ‘김영삼 시계’는 한자로 서명이 돼 있는 반면, ‘김대중 시계’는 한글로 적혀있다. 또한 김영삼 시계가 로마자로 시계 다이얼를 표시한 반면, 김대중 시계는 아라비아 숫자로 다이얼을 표시했다. 닮으면서도 때로는 달랐던 김영삼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미지와 묘하게 겹친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