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라는 자신보다 음이 5도 높은 바이올린이나 8도 낮은 첼로에 비해 존재감이 약해 보인다. 귀에 확 꽂히기 어려운 중음역대를 담당하는 악기의 숙명이다. 하지만 교향악이나 실내악 연주 때 비올라 소리가 별로이면 전체 음악이 좋게 들리지 않는다. 비올라가 현악기군의 중간에서 소리 균형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비올리스트 이수민(44)은 “비올라는 음악적으로 매개체 역할을 많이 하는 조력자 같은 악기이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잃으면 안 되는 악기인 것 같다”며 “나도 그렇게 하려고(그런 연주자가 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독주회(5일)를 앞두고 지난달 29일 서초구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수민은 이 같이 말하며 “따뜻하고 깊은 울림이 있는 비올라의 매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곡들을 들려줄 것”이라고 소개했다. 요크 보웬(1884∼1961,영국)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우크라이나)의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졸탄 코다이(1882∼1967,헝가리)의 ‘아다지오’,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독일)의 ‘비올라 소나타 2번’이다.
이수민은 이 중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비올리스트로도 이름을 날렸던 보웬에 대해 “비올라의 매력을 굉장히 잘 드러내는 작품을 많이 써서 비올라 역사에 매우 중요한 작곡가“라며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도 비올라의 따뜻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무대는 2018년 데카 레이블 첫 음반 발매 이래 꾸준히 호흡을 맞춰온 피아니스트 임효선이 함께한다.
보통 바이올린을 하다 비올라를 잡는 경우가 많은 것과 달리 이수민은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쳤다. 하지만 예중(예원학교) 진학에 대비해 전공을 고민하던 중 현악기의 질감이 마음에 들었고, 바이올린보다 깊은 울림에 빠져 비올라로 갈아탔다.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이후 세계일보 콩쿠르 대상과 동아일보 콩쿠르 비올라 최연소 우승, 독일 쾰른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 최우수 졸업 등으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솔리스트와 실내악·교향악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한양대 겸임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힘쓰는 이수민은 지금까지 음악인생에 변곡점을 맞게 해준 사람들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1985∼2016)와 진은숙(63·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 등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들을 꼽았다.
“(권혁주와) 연주를 몇 차례 같이 하면서 음악적으로 많은 교감을 했는데 그의 이른 죽음을 계기로 저도 음악과 무대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어요. 그가 그렇게 좋은 연주를 해줬던 게 정말 고마웠습니다. 음악가들이 평생 (실력을) 갈고 닦는 이유가 결국 누군가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이고, 그게 음악의 본질이잖아요.” 권혁주는 2004년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과 덴마크 칼 닐센 바이올린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을 차지하는 등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각광을 받았지만 급성 심정지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를 기리는 ‘권혁주 음악 콩쿠르’가 2021년 만들어졌다.
이수민은 “학생들에게도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지만 음악의 본질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대음악을 많이 연주하는 동안 만난 진은숙, 볼프강 림(72), 외르크 비트만(51) 등 해당 작곡가들과 곡에 관한 얘기를 나누면서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살아 있는 작곡가에게 곡 해석과 연주 방법 등 궁금한 것을 직접 물어보고 해소하는 경험이 특별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옛날 곡들을 연주할 때도 (나름의 해석에 그치지 않고) ‘작곡가가 생전 작곡할 때 진짜 원했던 게(음악이) 뭘까’라는 고민을 더 하게 됩니다.”
이수민은 “연주자가 나이가 들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같은 음악도 다르게 들리지 않겠느냐”며 “많은 기악 연주자의 꿈과 마찬가지로 저도 악기에서 벗어나 저만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