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의 법조 커리어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만큼 빠르고 완전하게 발전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AI의 리걸테크 시장 진입은)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ABA 테크쇼 2024’에 참석한 미국이민변호사협회 실무 및 전문가 센터의 수석 이사 리드 트라우트는 생성형 AI가 법조계에 가져올 변화를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학습 알고리즘을 통해 새로운 데이터와 콘텐츠를 생성하는 생성형 AI가 모든 산업에 접목되고 있다. 특히 언어 생성에 특화된 생성형 AI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법률서면 작성과 법률문서의 요약 및 쟁점 정리, 법률 질의응답 등에 특화된 리걸테크(법률+기술) 시장에 거대한 물결을 만들고 있다.
◆AI 적극 활용하는 해외 리걸테크
3일 AI 업계에 따르면 리걸테크 분야는 해외 기업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기술 도입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6월 톰슨로이터는 미국 리걸테크 기업 케이스텍스트를 약 8600억원에 전격 인수했다. 케이스텍스트는 법률 AI 비서 코카운슬(법률보조)을 서비스하는 기업으로 오픈AI의 GPT-4 기반으로 법률문서 검토, 증인 신문 준비, 유사 판결문 검색, 계약서 분석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이 회사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법률 정보 기업 렉시스넥시스도 지난해 10월 생성형 AI 기반의 ‘렉시스 플러스 AI’를 발표하며 법률 AI 솔루션 시장에 뛰어들었다. 미국 판례와 연방 법조문, 주석서 등을 탑재한 렉시스 플러스 AI는 대화를 통해 법률 정보를 검색하고, 법률 관련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다.
특히 해외 리걸테크 스타트업들은 생성형 AI 기반의 서비스 출시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올해 2월 개최된 ABA 테크쇼에서 혁신 리걸테크 스타트업으로 선정된 15개 기업 중 절반 이상은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같은 움직임은 생성형 AI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는 또 나날이 커지는 AI 시장에서 리걸테크가 얻어낼 먹거리가 그만큼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파이낸셜타임스와 시장조사업체 옴디아가 발표한 ‘디지털 경제 지표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생성형 AI 시장은 2023년 60억달러(약 7조8000억원)에서 2028년에는 590억달러(약 77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리걸테크 기술 어디까지
국내 리걸테크 기업은 30~40개 수준이지만 대부분 변호사 검색과 판결 분석, 전자 계약 등 단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쳐 최신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해외에 비해서는 기술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법률 플랫폼 이용을 둘러싼 로톡과 대한변호사협회의 갈등에서 법무부가 로톡 가입 변호사 123인에 대한 징계를 취소하면서 리걸테크 업계에 청신호가 켜졌다. 법무부의 징계 취소 결정으로 사업 반등의 계기를 마련한 로앤컴퍼니는 법률 AI 기술 연구를 바탕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생성형 AI 연구 개발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로앤컴퍼니는 자체 AI 시스템 빅케이스GPT로 제12회 변호사시험 객관식 문항을 푼 시험 결과를 공개했는데, 정답률은 53.3%로 GPT-3.5의 28.7%, GPT-4의 34%보다도 높은 기록이다.
현재 로앤컴퍼니는 빅케이스GPT에 다수의 언어 모델을 실험·적용해 생성형 AI 기반의 변호사향 서비스형 소프트웨어(B2B SaaS) 솔루션 ‘슈퍼로이어’를 개발하고 있다. 슈퍼로이어에는 △법률리서치 △법률서면 초안 작성 △법률문서의 요약 및 쟁점 정리 △법률 질의응답 △사용자 문서 기반 질의응답 등의 기능이 제공되며, 채팅 방식으로 이용 가능하다. 또 생성형 AI의 최대 한계점으로 꼽히고 있는 할루시네이션(AI 오류)을 제거해 정보의 정확성 높은 답변을 제공할 계획이다.
◆AI 기술이 불러올 변화는
그렇다면 법률시장에서 생산형 AI기술은 왜 필요할까. 최근 슈퍼로이어 알파버전 테스트에 참여한 변호사는 “전문적인 법률 용어 사용부터 구체적인 법령과 양형까지 제시하는 등 국내 법률 정보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이고 있다. 일반 생성형 AI에 비해 법률 정보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업무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해 판례 검색 및 분석, 법률 서식 초안 작성 등의 업무에 도움을 받게 되면 변호사는 업무 시간을 단축하고, 소송 전략 수립과 같이 부가가치가 높은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소비자 역시 양질의 서비스를 편리하고 빠르게 제공받을 수 있게 돼 법률시장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법조계에서도 생성형 AI 기술 도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는 9월부터 AI를 활용한 재판 업무 보조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검찰도 AI가 유사 사건 검색과 수사 정보 요약, 형량 제안 등을 해주는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리걸테크 업계 관계자는 “생성형 AI 기술은 법률가에게 이용 가치가 높은 도구로써 법률 업무에 대한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본환 로앤컴퍼니 대표 “생성형 AI 주기능, 법률업무와 관련성 높아”
“생성형 인공지능(AI)은 텍스트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것을 주 기능으로 하고 있어 법률 업무와 관련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생성형 AI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로앤컴퍼니의 김본환(사진) 대표는 3일 생성형 AI 기술이 리걸테크(법률+기술) 산업에서 갖는 의미를 이처럼 설명했다.
김 대표는 “로앤컴퍼니는 AI 스캔을 비롯해 각종 상품에 AI 기술을 접목시켜왔고 현재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향후 전 제품에 생성형 AI 기술을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변호사 상담 내용 중 주요 부분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AI 스캔을 변호사 답변서 초안 작성 기능으로까지 발전시킨다는 게 김 대표의 복안이다.
이미 로앤컴퍼니는 ‘로톡’과 AI 기반 통합 법률 정보 서비스 ‘빅케이스’에 다양한 AI 기술을 활용했다. 그는 “빅케이스의 ‘AI요점보기’의 경우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해 판결문의 내용을 요약해 주는 기능으로 고도화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빅케이스는 2022년 출시 당시 ‘AI요점보기’뿐만 아니라 5000자 정도의 긴 텍스트를 입력해 관련성 높은 판례와 법령을 검색해 주는 ‘서면으로 검색’, 판례 검색 결과를 쟁점 키워드로 그룹화해 보여주는 ‘쟁점별 판례 보기’ 등 국내 최초로 본격 AI 기술을 활용한 검색 기능을 선보였다.
로앤컴퍼니에 올해 가장 중요한 이슈는 상반기 출시 목표로 개발 중인 변호사향 서비스형 소프트웨어(B2B SaaS) 솔루션 ‘슈퍼로이어’다.
김 대표는 “안기순 법률AI연구소장과 이상후 AI팀장 등 변호사 출신 국내 최고 법률 AI 엔지니어들이 개발을 이끄는 점이 경쟁력”이라며 “법률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어 그는 “국내 리걸테크 산업 발전이 글로벌에 비해 더디지만 부당한 외부 환경을 이겨내며 이제 막 도약의 발판이 마련됐다”며 “생성형 AI 기반으로 글로벌 기업들과 견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 3년 내에 대한민국 첫 번째 리걸테크 유니콘의 역사를 쓰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