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과 야당 등 정치권이 최근 밝힌 국토개발 구상 중 실현 가능성과 재원 확충 측면에서 ‘최악’으로 꼽히는 건 단연 교통 분야 정책이다. 철도 지하화 공약 등은 특히 선거철만 되면 정치권이 꺼내 드는 ‘단골’ 소재지만 최소 수십조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사업비는 민간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책임을 비껴가는 중이다. 그마저도 현실성이 없는 책상머리 구상이라는 비판이 많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월31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에서 전국 주요 도시의 철도를 지하화하고, 지하화로 만들어지는 상부 공간과 주변 부지를 통합 개발하겠다고 공약했다.
한 위원장은 “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철도 지하화는 민자(민간자본) 유치로 이뤄져 재원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는 같은 달 25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주요 지상 철도 구간을 지하화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하면서 사업비로 약 50조원을 예상했다.
한 위원장 발언 바로 다음 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맞불을 놨다. 이 대표는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에서 철도·광역급행철도(GTX)·도시철도의 도심 약 259㎞ 구간을 지하화하고 그 부지에 특례를 적용해 주거복합 시설을 개발하는 내용의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민주당 이개호 정책위원장은 “259㎞ 중 80%가 지하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지하화 관련 사업비는 1㎞당 4000억원 정도로 전체로 계산하면 80조원 내외의 사업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자 유치에 의해 충분히 사업성을 확보하고, 그렇게 해서 정상적인 사업이 추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철도 지하화는 도시재생과 낙후지역 활성화 차원에서 매력적인 공약이다. 하지만 그동안 철도 지하화가 실현되지 못했던 건 재원 확보 문제 때문이다. 철도를 지하화해 생기는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하화의 재원을 개발이익으로 충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가가 낮은 지역은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또 국가 소유인 철도 부지의 경우 상부를 주거단지 등으로 개발한다 해도 토지 소유권 문제가 발생한다. 하부에 국유 철도 노선이 깔리기 때문에 상부만 따로 떼 민간에 팔 수도 없는 구조다.
정부의 GTX 사업도 선거를 겨냥한 설익은 정책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보인다. 현 정부 GTX 대책은 GTX A·B·C 노선의 차질 없는 개통과 함께 이들 노선의 연장과 D·E·F 노선 신설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민간 투자 유치를 적극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민간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질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민간 참여 의사가 없는 구간은 국가 재정으로 충당해야 할 수도 있다. GTX 1기 사업의 경우 당초 예산이 13조638억원이었지만 이후 추진 과정에서 17조원으로 늘어난 전례가 있다. 1기 GTX보다 사업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 D·E·F 노선에 과연 민간 사업자가 참여하겠느냐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김진유 경기대(도시공학) 교수는 “철도 지하화, GTX 모두 장기 프로젝트라 정부 목표 연도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며 “특히 철도 지하화는 GTX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로 “철도 지하화가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지하 철도 상부에 공원 조성은 가능할지 몰라도 상업적인 개발이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재원 마련이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