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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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 좋아도 적용 힘들면 악법…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논의 시작해야” [심층기획]

산업안전 전문가 정진우 교수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시행을 놓고 50인 미만 사업장의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반응의 가장 큰 이유로 법의 복잡성을 꼽았다. 자본과 지식 부족 등의 이유로 법률 검토와 대응이 어려운 50인 미만 사업장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산업안전 전문가인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5일 “중대재해법은 법문이 상당히 복잡한 편”이라며 “산업안전보건법 등 다른 법률과 중복되거나 상충하는 내용이 많아 실제 이행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법의 생명은 예측 가능성과 이행 가능성인데, 이것이 결여되어 있으면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중대재해법 확대 시행에 앞서 서울시가 지난해 9월 관내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 ‘중대재해법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다고 답한 56%의 사업장이 느낀 어려움으로 ‘법 의무 이해의 어려움’(37%)을 가장 많이 꼽았다. 정 교수는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조차 (중대재해법이) 요구하는 의무사항 및 범위에 대한 기업과 연구자들의 문의에 제대로 된 답변을 못 주고 있다”며 “그 결과 자의적인 법 집행과 해석이 난무하고 있고, 기업들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문서 작업을 통해 (중대재해법을 지키는) 시늉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법이 요구하는 서류의 수준도 중소기업의 여건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교수는 “중소기업의 여건에 맞지 않는 서류 작성에 시간을 뺏기다 보면 정작 안전 활동을 못 하게 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대재해법 적용을 업종별로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정 교수는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지적”이라면서도 “업종별 구분 같은 부분적인 개선으론 해결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대재해법이 산업법과 중복·상충하는 등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며 “시행령을 최대한 명확하게 채워 이행 가능성을 확보할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중대재해법이 재해를 예방하려는 선제적 노력보다 사후 처벌에 초점을 두는 것이 근본적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우리 사회에 엄벌 만능주의가 팽배해 강한 형사 처벌만으로 사고가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들을 많이 한다”며 “정치권과 행정기관은 눈 가리고 아웅 하려는 식의 쉬운 방법을 찾으려 할 것이 아닌 시스템 개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솔·백준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