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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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의 기회”… 증원 신청 72.7%가 비수도권 대학 [의료대란 '비상']

전국 의대 희망 수요 지역별 분석
서울 8곳 365명·지방 27곳 2471명
정부의 ‘2000명 증원안’ 훌쩍 넘어

대학, 신청 규모로 ‘증원 의지’ 확인
‘모집난’ 지방대학 생존 위해 사활

정부 “지역의료 강화 희망 보인 것”
의협 ‘대학본부 압력설’ 주장 일축

‘2000명’을 넘길 것인지가 관심사였던 대학의 의대 정원 신청 규모가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3400여명에 달하면서 의료계가 술렁이고 있다. 교수와 재학생 등 의대 구성원 반발이 큰 상황이지만, 대부분의 대학은 늘어난 정원을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1차 수요조사 때보다도 많은 인원을 써낸 분위기다. 정원을 많이 신청했다고 실제 정원이 많이 배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신청 규모로 교육부에 대학의 의지를 보여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학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선 모양새여서 정부의 2000명 확대안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려대 의대는 학생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정책에 반발해 휴학계를 내자 개강을 연기했다.   연합뉴스

◆정부도 예상 못 한 대규모 신청

5일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까지 진행한 의대 정원 수요조사에서 40개 대학은 총 3401명의 정원을 신청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소재 8개 대학 365명(10.7%), 경기·인천 소재 5개 대학 565명(16.6%), 비수도권 27개 대학 2471명(72.7%)이다. 비수도권 의대에서 신청한 인원만으로도 정부의 증원안(2000명)을 넘어선다.

교육부는 지난 1차 수요조사 결과는 지역을 나누지 않고 총원만 공개했다. 이번에 서울과 경기·인천, 비수도권으로 나눠 공개한 것은 실제 증원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비수도권 대학에서도 많은 인원을 신청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의료계에선 한 번에 정원을 많이 늘리면 교육 여건 등이 악화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정부가 제시한 2000명이 현실적으로 확대 가능한 규모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정부는 이번에 늘어난 정원은 ‘비수도권 의대·소규모 의대 중심’으로 배정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이번 수요조사는 2000명이 넘을지가 관건이었다. 2000명이 넘을 경우 정부의 정원 확대 주장에 근거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대학들이 정원 신청에 소극적이라면 의료계에서 ‘대학의 여력이 없다’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진행된 1차 수요조사에서 대학들은 최소 2151명, 최대 2847명을 늘려 달라고 요구했다. 최소수치는 시설 등 확충 없이 현재 수준으로 수용 가능한 규모고, 최대수치는 추후 시설 등이 보강됐을 때 늘릴 수 있는 규모다. 교육부는 1차 수요조사 결과를 근거로 이번에도 2000명은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으나 최대수치까지 넘어설 줄은 몰랐던 분위기다. 최근 의료계에서 각 대학에 증원 신청을 자제하라고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부 내부적으로는 2500∼2800명의 수치를 예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들 “정원 한 명이라도 더”

대학들은 정원을 확보하기 위해 ‘일단 많이 신청하고 보는’ 기조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증원 신청 규모만으로 정원을 배분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정원 배분 시 정원 신청 규모를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정원 신청을 하지 않은 대학에 임의로 배정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대학 입장에서는 정원을 조금만 신청하면 추후 정원 배분 시 많은 인원이 배정되기 어려울 것이라 느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의대 정원 확대가 약 30년 만에 추진되는 것인 만큼 대학가에선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를 얻기 힘들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았다. 정부가 밝힌 정원 배분 우선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서울 지역 8개 대학이 큰 기대가 없는 상태임에도 365명을 써낸 것도 이런 이유로 추정된다. 한 수도권 대학 관계자는 “의대 쪽에서 심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학교 차원에서는 이번이 아니면 (의대 증원이) 반세기가 걸려도 될지 말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특히 비수도권 대학의 경우 학령인구 감소로 매년 모집난이 심화하는 상황이어서 의대 정원 확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현재 대입에서는 ‘의대 쏠림’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쓰일 정도로 의대는 대학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학과로 꼽히는 데다가 의대가 있는지에 따라 대학 위상이 달라지기까지 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비수도권 대학들은 충원율 확보에 문제가 없고 학교 위상에도 큰 도움이 되는 학과를 이렇게 늘릴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내년도 의과대학 정원 신청에 전국 40개 의대가 3,401명 증원 신청했다고 밝힌 5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에서 의대생들이 출입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는 이번 조사가 각 대학의 실제 수요를 더 정확하게 반영했을 것이라며 2000명 확대 추진 방침을 재차 강조했다.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번 조사는 예비조사 성격이고 이번은 본조사”라며 “각 대학이 더 신중하게 검토하고 논의해 결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조사는 단순 수요조사였지만 이번 조사는 실제 증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각 대학이 더 정확한 수치를 제공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비수도권 증원 신청에 대해서는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 강화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박 차관은 “(배분은) 비수도권의 지역 중심으로 하고, 지역 거점병원 역할을 하는 곳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면서 “의료교육의 질을 확보하기 위한 소규모 의대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는 의대 학장이 1명의 증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그 외 대학 대부분이 많아야 10% 증원을 얘기했음에도 대학 본부와 총장 측이 일방적으로 많은 수를 정부에 보고했다”며 “외부의 압력이 있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의대 정원 신청은 대학의 자율적인 의지에 기반한다”며 “증원 신청을 안 하면 불이익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김유나·조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