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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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을 멈출 수도 있는… 세상을 바꾼 물질 6종

英 저널리스트
소금·구리·석유 등
세계 뼈대 역할하는
물질 6개 선정 소개

일상에서 흔한 ‘모래’
유리·광섬유·반도체
건설자재 등 곳곳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물질의 세계/에드 콘웨이/이종인 옮김/인플루엔셜/2만9800원

 

미국 네바다주의 코르테즈 광산. 광산기업 바릭골드는 이곳에서 금을 캐낸다. 암반층을 폭파해 작은 바위로 쪼갠 뒤 가루로 갈아서 시안화물 용액과 혼합해 금을 추출한다.

놀랍게도 표준 중량의 골드바(12.4㎏) 하나를 만들려면 흙 5000t을 파내야 한다. 과거에는 0.3t의 광석으로 결혼반지 하나에 필요한 금을 얻을 수 있었다. 오늘날 같은 양의 금을 얻으려면 최소 4t에서 최대 20t의 광석이 필요하다.

영국 저널리스트 에드 콘웨이는 이렇게 막대한 비용이 드는 공정을 참관한 뒤, 금보다 더 필수적인 물질을 얻기 위해서는 얼마나 복잡한 과정이 필요할지 궁금해졌다. 이는 ‘세상에 없다면 문명을 멈춰 서게 할 정도로 중요한 물리적 요소들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책 ‘물질의 세계’에 따르면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 6가지는 ‘세상의 뼈대를 이루는 벽돌’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이 물질들이 사라지면 문명이 멈춰설 정도로 중요하다. 사진은 모래. 게티이미지 제공

책 ‘물질의 세계’는 이런 화두를 토대로 인류 문명에 필수인 물질 6개를 선정했다. ‘세상의 뼈대를 이루는 벽돌’ 역할을 하는 물질로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 6가지를 골랐다. 이 물질들이 역사적으로 산업과 국가의 성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소비자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지 씨줄날줄로 엮어 보여준다.

6가지 물질 중 소금, 철, 석유는 바로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되지만 모래, 구리, 리튬에는 물음표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모래는 하찮고 흔해 보이지만 유리부터 광섬유, 반도체를 만드는 주요 물질이다.

모래알의 주성분은 실리카이다. 이산화규소나 석영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각국 정부는 모래에서 파생한 선진 기술인 유리 제조법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했다. 유리로 만든 정밀한 조준경은 1차 세계대전 당시 필수 기술이었다. 무기 발달로 포탄이 수십 킬로미터까지 날아가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쌍안경, 망원경, 잠망경 등 정밀 광학 분야의 공급망을 틀어쥔 국가는 독일이었다.

독일이 선두로 나선 데는 흥미로운 배경이 있다. 17∼18세기 영국은 상업용 유리와 고급 광학 분야의 선두주자였다. 그런데 영국 정부가 세수 확대를 위해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정책을 도입하고 유리 자체에도 다양한 세금을 부과했다. 영국 회사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그 사이 프로이센 왕국은 유리 제조업에 재정을 지원하고 정부 주문량도 보장해줬다. 영국이 주춤하는 사이 독일 유리 산업은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치고 나갈 수 있었다.

 

여러 종류의 모래 중 실리카 함량이 95%인 실리카 모래(백사)는 금속을 녹여 붓는 주조 금형,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의 제조에 사용한다. 열차 제어 장치에도 쓰인다. 실리카 모래가 없으면 현대 철도 시스템은 멈춰버린다.

영국의 실리카 모래는 스코틀랜드의 로칼린에서 나온다. 로칼린 백사는 노르웨이로 옮겨져 탄화규소를 만드는 데 투입된다. 탄화규소는 전기차 생산의 핵심 소재다.

모래는 인터넷 시대도 가능케 했다. 1934년 미국 코닝에서 일하던 화학자 제임스 프랭클린 하이드는 수천년 만에 유리 제조법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사염화규소(실리카 모래를 염화물 혼합물에 녹인 액체)에 화염을 분사해 용융실리카를 만들었다.

이 용융실리카는 1960년대에 빛을 본다. 중국 출신 전기공학자 찰스 가오 덕분이다. 가오는 투명한 유리로 만든 광섬유가 먼 거리까지 빛을 보낼 수 있음을 발견했다. 다만 기존 광학유리로 광섬유를 만들면 빛을 겨우 10m만 전달하는 한계가 있었다. 가오는 하이드가 개발한 초순도 용융유리를 사용하면 데이터를 몇 킬로미터나 손실 없이 보낼 수 있음을 발견했다. 오늘날 광섬유는 지하와 대양을 가로지르며 정보를 실어나른다.

모래는 중요 건설자재이기도 하다. 모래와 자갈, 시멘트의 혼합물인 콘크리트는 겨우 한 세기 전부터 대량생산됐다. 그런데도 오늘날 지구상에는 1인당 80t이 넘는 콘크리트가 존재한다. 이를 전부 합하면 총 650기가t이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을 전부 합한 무게보다 많다.

에드 콘웨이/이종인 옮김/인플루엔셜/2만9800원

저자는 마지막으로 석영모래가 반도체로 탈바꿈하는 긴 여정을 따라간다. 스페인 세라발의 석영 광산에서 여정이 시작된다. 여기서 캐낸 석영암을 1800도 이상 용광로에 넣어 실리콘메탈을 얻고, 이를 독일 회사로 가져가 반도체 등급의 폴리실리콘으로 만든다. 폴리실리콘은 웨이퍼 제조공장에서 초코랄스키법을 거쳐 실리콘 잉곳으로 태어난다. 실리콘 잉곳을 얇게 썰면 웨이퍼가 되고, 웨이퍼는 다시 몇 주∼몇 달에 거쳐 1만개 이상의 단계를 밟아 반도체 칩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에 후공정을 거치면 스마트폰 부품으로 완성된다.

저자는 모래 외에도 소금, 철, 석유, 구리, 리튬을 역사적 배경부터 우리 일상으로 오기까지 복잡다단한 과정을 상세히 풀어 소개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