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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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버티면 이긴다”는 오만에 동료 의사 겁박하고 복귀 막나

(경기=뉴스1) 김영운 기자 =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18일째 진료 현장을 떠나면서 의료 공백이 확산되고 있는 8일 오후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2024.3.8/뉴스1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병원 집단이탈이 오늘로 4주차에 접어든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6일까지 수술 연기나 취소에 따른 피해를 신고하며 법률상담을 요구한 사례가 127건에 이른다. 그런데도 일부 대학병원에선 교수들마저 전공의들에 동조하며 사직할 움직임을 보인다니 국민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환자 곁에 남기를 택한 의료진이 동료들의 폄훼와 겁박에 시달리는 실태는 우려를 넘어 개탄을 자아낸다.

이탈을 거부하고 병원에 남은 의료진은 요즘 ‘당직 지옥’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간 당직을 서고 다음날 바로 주간 근무에 투입되는 식이니 그들의 번아웃 호소에 공감이 간다. 이런 의사들을 정작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참의사”라고 부르며 조롱하는가 하면 명단을 공개해 ‘배신자’로 낙인찍으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일부 의사는 병원 복귀를 검토하는 전공의들에게 “총선 때까지 버티면 무조건 이긴다, 시간은 우리 편”이라며 돌아가지 말 것을 종용했다고도 한다. 대규모 의사 증원은 총선을 겨냥한 정부·여당의 ‘정치쇼’라는 정치권 일부의 음모론을 연상케 한다. 대한민국 최고 지성인들의 언동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이른바 ‘빅5’처럼 전공의 비중이 높은 몇몇 대형병원의 파행 운영이 지속되는 속에 고무적인 현상도 있다. 비대면 진료가 크게 늘어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3일 보건복지부가 초진 환자도 제한 없이 비대면 진료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 뒤 활용 건수가 두 배 넘게 증가했다. 동네 의원이나 중형병원을 건너뛰고 대형병원 문부터 두드리는 경증 환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대형병원에만 몰리던 환자가 중형병원 등으로 분산되며 진료 공백을 메우는 셈이다. 의사들의 오만이 부른 의료대란을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의료개혁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의사들은 ‘버티면 이긴다’는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나 당장 의료현장으로 복귀해야 한다. 시간은 업무가 많다면서도 의사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아니라 의료개혁을 간절히 바라는 국민 편이다. 아울러 정부는 그간 전공의들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일부 대형병원의 비정상적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전공의 수가 적어 교수 등 전문의가 거의 모든 진료를 맡는 몇몇 종합병원이 의료대란 속에서도 정상가동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