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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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치 낮춰라” 文 정부 집값 조작 혐의 김수현·김상조 기소

문재인 정부 당시 125차례에 걸쳐 주택 통계를 조작한 혐의로 전임 청와대 정책실장과 국토부 장관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총선을 앞두고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에 대해 정치적 중립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으나 검찰은 “어떤 목적이나 의도도 없다”며 일축했다.

 

대전지검은 14일 김수현·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등 11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통계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장하성·이호승 전 정책실장은 혐의없음 처분했다. 지난해 9월 감사원의 수사의뢰를 받은 지 6개월 만이다.

 

김수현·김상조 전 실장과 김 전 장관 등 대통령비서실과 국토부 관계자 7명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 효과로 집값이 안정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주택 통계인 한국부동산원 산정 ‘주간 주택가격 변동률’(변동률)을 125차례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또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4년6개월 동안 부동산원에 변동률이 공표되기 전 매주 2회 청와대에 미리 보고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토부는 집값 변동률 ‘확정치’(7일간 조사 후 다음 날 공표)를 공표하는데, 한국부동산원에 중간값 성격으로 산출한 ‘주중치’(3일간 조사 후 보고)와 통계작성 과정을 마치지 않은 ‘속보치’(7일간 조사 즉시 보고)를 사전에 보고하게 했다. 작성 중인 통계를 공표 전에 다른 기관에 제공하는 것은 통계법 위반이다. 

 

수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국부동산원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사전 검열해 2021년 8월까지 상시적으로 서울·인천·경기 지역 주택 매매·전셋값 변동률을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수현 전 실장과 윤성원 전 국토부 1차관은 아직 발표하지도 않은 부동산 대책 효과를 변동률 산정에 반영하라고 지시하고, 김현미 전 장관은 부동산 대책 효과가 숫자로 나타나야 한다고 국토부 직원들에게 거듭 지시, 국토부 실장 등이 부동산원 직원들을 질책해 변동률을 낮추게 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확정치를 낮춰라’, ‘장관님이 보합은 안된다고 한다’ 등 대통령비서실의 명시적인 지시가 관련자들의 문자메시지와 진술 등에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특히 6·17 대책 등 각종 부동산 대책 시행 이후와 2019년 대통령 취임 2주년, 2020년 총선 무렵 등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조작이 집중됐다고 밝혔다. 그 결과 2017년 11월에서 2021년 7월까지 서울 지역 아파트의 실거래가 상승률인 81%였는데도 부동산원 주택가격 상승률 통계는 12%에 그쳐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부동산원 한 직원은 청와대와 국토부에 “주간 변동률이 실제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정상화해야 한다”는 이메일을 보냈다가 국토부 관계자로부터 “조작 증거를 남기려는 것이냐”는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집값뿐 아니라 소득·고용 관련 통계에도 정권에 유리한 쪽으로 왜곡·조작하기 위해 개입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검찰은 밝혔다.

 

김상조 전 실장과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 4명은 고용통계 조사 결과 비정규직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자 새로운 통계조사 방식 때문에 비정규직 수치가 증가했다는 식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보도자료 초안에 있었던 ‘2019년 10월 전년 대비 비정규직 노동자가 86만7000명 급증했다’는 내용을 삭제하고, 전년도 통계와 비교 불가능하다는 내용을 추가해 통계조사 결과를 정부에 유리하도록 축소·왜곡했다는 것이다.

 

서정식 대전지검 차장검사가 14일 문재인 정부의 집값 통계조작 의혹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강은선 기자

서정식 대전지검 차장검사는 “이 사건은 정부가 권력을 남용해 국가통계의 정확성과 중립성을 정면으로 침해한 최초의 통계법 위반 사례”며 “부동산 대책 실패로 주택가격이 폭등하고, 일자리 정책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이 증가하자 대통령비서실 주도로 장기간 국가 통계를 조직적으로 조작하거나 통계조사 결과를 왜곡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검찰은 통계법 위반의 법정형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너무 낮고, 공소시효도 5년에 불과해 전임 정부 초기의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처벌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입법 개선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총선을 앞두고 전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해 정치적 논란이 이는 것과 관련해서는 “그 같은 점을 우려해 수사를 신속하게 마무리하려 했으나 구속영장이 두 차례 기각되면서 지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문기 전 행정중심복합건설청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두 차례 기각되는 등 초기부터 제기됐던 전 정권에 대한 ‘표적수사’ 논란에 대해선 “통계의 원데이터를 조작한 것이기 때문에 표적수사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 김수현 전 실장은 입장문을 내고 “저를 포함해 문재인 정부의 어떤 인사도 부동산 통계를 조작하거나 국민을 속이려 한 바 없다”며 “이번 기소는 윤석열 정부의 정치보복과 망신주기에 불과하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는 “정책 담당자로서 오르는 집값을 걱정해 ‘정확한 상황을 알아보라’고 한 말을 검찰은 조작 지시로 둔갑시켰다”며 “검찰은 조작 지시라는 구체적인 진술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자 실무진들을 압박했으며, 저 역시 네 차례나 압수수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검찰은 지난해 9월 감사원의 의뢰를 받아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대통령기록관과 국토부를 압수수색하고 전임 정책실장 4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하는 등 수사를 벌여 수사 요청 대상자 22명 중 11명을 기소했다.


대전=강은선 기자 groove@segye.com